정상화 ‘무제’ 817%-박서보 ‘묘법’ 793% 값 올라… ‘단색화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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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최근 10년 경매가 분석


“단색화는 그동안 얼마나 가격이 오른 건가요? 지금 사면 ‘막차’ 타는 건 아닙니까?”

미술 애호가인 지인의 질문이 발단이 됐다. 예술 세계를 돈으로만 환산할 수는 없지만 미술품 가격이야말로 시장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 아니던가. 2006∼2007년 최대 호황을 맞았다가 금융위기에 무너진 국내 미술시장을 2012년쯤 살려낸 게 한국의 단색화다. 세계 추상 흐름을 기막히게 잘 탄 단색화의 경쟁력은 계속되는가. 지난 10년간 국내 미술품 가격은 어떻게 변화했고 향후 어떻게 나아갈까.

본보는 국내 최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국내 주요 미술품의 최근 10년간 가격 변동을 조사했다. 미술품은 한 작품이 여러 경매에 나오는 경우가 드물어 동일한 작품을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작 연도 및 크기, 시리즈 등 조건이 유사한 작품을 택해 경매 낙찰가를 비교했다.

그 결과 가장 가파른 가격 상승폭을 보인 것은 역시나 단색화였다. 정상화의 ‘무제’(캔버스에 아크릴·162×131cm·1993년)는 2007년 6000만 원에 낙찰된 데 비해 지난해 12월엔 비슷한 1990년 작품이 5억5000만 원에 거래돼 약 10년 만에 817%의 가격 상승을 보였다. 박서보의 ‘묘법’은 2900만 원에서 2억5894만 원으로 793%나 뛰었다. 이우환은 위작 시비에 휘말렸던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는 10년 전 수준이지만, 그 논란에서 비켜간 ‘바람 시리즈’는 821% 올랐다.

지난해 서울옥션의 낙찰가 상위 톱10을 조사해보니 한국 추상화의 거장인 김환기의 작품이 1∼3위를 차지했다. 김환기는 올해 5월 경매에서는 2013년에 비해 가격이 236% 뛰기도 했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그동안 이중섭 박수근 등 근대 작가 중심으로 형성됐던 한국 미술시장이 세계적 추상 흐름과 맞물려 국제 경매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라며 “한국 작가들의 가치는 아직 저평가돼 있지만 ‘시장성’을 갖춘 작가는 극히 일부라 연봉의 10% 이내에서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단색화가 끌어올린 민중미술의 경우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인 황재형의 작품은 2015년 4500만 원에서 올해 5월 6457만 원으로 2년 만에 43% 올랐다. 단원 김홍도의 ‘화조도’는 40%, 서세옥의 ‘군무’는 88% 상승했고,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과 이왈종의 ‘제주생활의 중도’는 10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최근 낙찰됐다. 추상화 강세 속에 꽃과 풍경을 그려온 유명 작가들의 구상 작품은 70% 가까이 떨어졌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강남대 경제학과 교수)은 “세계화 가능성이 큰 작가와 작품만이 살아남는 ‘투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1세대 단색화 작가들은 최근 외국에서 활발한 전시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국내 메이저 화랑에서는 오히려 단색화 전시가 뜸한 편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1세대 원로작가들의 1970∼1980년대 작품이 고갈돼 가기도 하고, 그 때문에 40∼60대 2세대 단색화 작가를 찾으려는 것 같기도 하다. 고로 단색화의 잠재력은 아직도 크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지인에게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답해야겠다.

“‘잭팟’은 아직 터지지 않은 듯합니다. 이제부터가 관건이군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단색화#미술시장#경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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