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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 특집①] “좌절과 부침, 이젠 ‘뺄셈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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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 특집①] “좌절과 부침, 이젠 ‘뺄셈의 연기’”

윤여수 기자 입력 2017-08-25 06:57수정 2017-08-25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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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동건은 2014년 영화 ‘우는 남자’를 끝내고 “내적인 슬럼프를 겪었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지만 결국 답은 영화였다. 23일 개봉한 ‘브이아이피’를 시작으로 촬영을 마친 ‘7년의 밤’을 연이어 내놓는 그는 곧 새 영화 ‘창궐’ 촬영도 시작한다.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 스타, 명예의 전당 ①배우 장동건

이젠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게 중요
잘 하려고만 하는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우는 남자’ 찍고 슬럼프…일로 풀었죠

아이들과 보내느라 야구 안 한 지 6년
냉동만두·토스트 굽는 건 내가 최고

23일 개봉한 영화 ‘브이아이피(V.I.P)’ 속 국정원 요원 장동건은 안경을 썼다. 냉철함 속에서 현실적 이익과 가치의 혼돈 사이를 오가는 미묘한 캐릭터에 제법 어울린다. 장동건은 “안경을 쓰면 상대가 눈을 잘 볼 수 없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면서 “관객이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무려 100개가 넘는 안경을 써봤다는 그는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며 캐릭터가 갖는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1992년 데뷔해 이제 연기 생활 25년차를 지나는 그이지만 지나온 시간만큼 고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숱한 성과를 기억하려는 ‘명예의 전당’은 또 그렇듯 늘 새롭게 나아가는 이들의 것이기도 하다.

#1992년 가을의 어느 날

6월 MBC 21기 공채 탤런트가 된 장동건은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촬영을 앞두고 꼬박 이틀을 굶었다. 이제 갓 카메라 앞에 나선 자신에게 집중되는 스태프의 시선에 “제대로 하네”라는 생각을 안기고 싶었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을 훔쳐 먹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굶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2004년 11월29일 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2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장동건이 호명됐다.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이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연기력을 폭발시킨 성과이기도 했다. 장동건은 “정말 너무너무 받고 싶던 상이었다”며 감격했다. 그는 이를 자신의 인생 최고 ‘환희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2017년 8월23일 서울 압구정동 모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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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30분 돼지머리가 앞에 놓인 고사상이 차려졌다. 장동건, 현빈 등 배우들이 차례로 절을 올렸다. 새 영화 ‘창궐’의 무사 촬영과 흥행을 기원하는 고사였다. “보고자 하는 관객이 있어, 보이고자 하는 영화가 되었으니…”라는 의미 깊은 메시지가 고사상 위에 내걸렸다. 장동건의 표정은 밝았지만 여전히 긴장감은 놓지 않았다. 배우로서 마땅한 의무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늘 불안하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금은 영화 ‘브이아이피(V.I.P)’까지 개봉했고, ‘창궐’의 촬영까지 앞뒀으니 더하다. 어릴 때에는 불안을 떨치기 위해 최대한 회피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배우 장동건.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 배우 장동건

불안과 긴장 속으로 애써 뛰어든 배우 장동건(45). 돌아보면 그가 걸어온 길은 늘 그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었던 듯싶다. 장동건은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생으로 입학했다. 데뷔한 지 고작 2년 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든 ‘우리들의 천국’을 통해 청춘스타로 우뚝 섰던 때였다. 그만큼 그의 선택은 더욱 의아하게 받아들여졌다.

“‘우리들의 천국’을 첫 촬영하고 나서 ‘그만둘까’ 생각도 했다. 공채 탤런트로 ‘취직’을 했다. 배우로서 욕심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선배들은 ‘3년 동안 엑스트라를 하며 경험을 쌓으라’ 했는데, 의도하지 않게 빨리 데뷔했다. 운이 좋았다. 하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마지막 승부’를 마치고 학교에 갔다.”

연기에 대한 갈증은 본격적인 공부로 이어졌다. 하지만 2년 만에 학교를 떠났다. “학칙상 입학 후 2년 동안은 활동을 할 수 없었다. 2학년을 마칠 즈음, 졸업 때까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학칙이 바뀌었다. 2년 더 활동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고민도 많았다. 현장에도 다시 가고 싶었고.”

드라마 ‘아이싱’으로 복귀했다. 그렇게 돌아왔지만 연기력보다는 “잘 생긴 미남배우”라고만 인식됐다. “본격적인 고민은 30대 때부터였다. 열심히 하는 걸 알아주는 사람도 있었고,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수차례 올랐다. 하지만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그저 내 일을 열심히 할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다.”

그래도 대중은 그의 노력과 진심을 알아보지 못했다. 1999년, 이젠 아내가 된 고소영과 함께, 영화 ‘연풍연가’를 촬영하면서 “그의 대본은 너무도 너덜너덜했다. 각 페이지마다 무언가 깨알처럼 메모가 적혀 있었다”고 당시 제작 관계자는 돌이켰다.

그러고 나서 선택한 무대,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였다. 우뚝한 주연이 아닌 자리를 자청했다. 안성기, 박중훈과 함께한다는 믿음도 있었지만, 오로지 연기에 대한 욕심 하나로만 버텼다. 관객과 대중이 조금씩 그를 배우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좌절과 부침과 산전수전”의 과정을 겪고 나서야 이룬 성과였다. 스스로도 지나친 욕심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젠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작업을 한다. 너무 잘 하려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을 알게 됐다. 연기를 해온 25년에 비해 작품수가 적다. 그 경력에 걸맞나 싶어 반성하기도 한다. 좋음과 안 좋음의 비율이 7:3일 때, 그 안 좋은 3 때문에 출연을 고사한 적이 많다. 모든 사람이 나만 보고 있을 것 같은, 그래서 배우로서 이미지,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던, 조심스러운 때였다. 지금은 7만 본다. 신중하다고 해서 꼭 잘 되는 건 아니다.(웃음)”

억지로 뭘 끄집어내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배웠다. ‘우리들의 천국’ 이후 1993년 즈음 그는 무려 한 달 동안 MBC의 모든 예능프로그램을 ‘섭렵’했다. ‘우정의 무대’만 빼고. “한 달 30일 중 28일 동안 매일 TV에 등장했다. 그땐 그게 맞나보다 했지만 남은 건 결국 트라우마 같은 거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코미디가 거의 없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망가지는 캐릭터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 않다”고 털어 놓았으니.

그렇게 지나고 있는 25년의 시간. 자연스러운 “반성과 되돌아봄”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2014년 영화 ‘우는 남자’ 이후 2년 동안 “내적인 슬럼프도 겪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영화를 보는 것도 일 같아서 힘들고.”

대신 영화 ‘7년의 밤’ 속에서 부대꼈다. “일로 풀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로소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도 생겨났다. 내 한계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고 하니 스스로도 새로워 보이더라. 하하!”

● 자연인 장동건

2010년 고소영과 결혼해 두 아이를 얻은 일상도 힘을 보탰다. 결혼 이후 “유연하고 편안해졌다”는 그는 “자연인으로서 내가 더 잘 있어야 배우로서도 그렇게 된다”고 말한다.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함께 축구교실도 가야 한다. 가을 운동회도 가야겠다. 내성적인 성격이 그렇게 변하나보다. 하하!”

그 좋아하던 야구글러브를 벗은 지도 5∼6년이 됐단다. “야구를 하려면 일요일에 해야 하는데, 아이가 학교 가지 않는 날이어서 눈치가 보인다. 그게 내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고, 또 잘못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시간이라는 건 결국 나가서 노는 거다. 별 것 아니다. 안 해도 되는 것들이다. 친구들과 약속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자기 전까지는 잡지 않는다. 밤 9시가 지나야 한다.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술 마실 일도 없다.”

“일하지 않는”, 자신의 빈 시간을 온전히 아이들과 가정에 쏟는 셈이다. 아이들이 훌쩍훌쩍 자라나면서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나만의 시간이 재미없음”을 알게 해주었다.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 가족여행을 최근 다녀왔다는 그는 또 한 번 아빠로서 자신을 돌아봤다. “사진을 취미로 삼고 있는데, 아이가 카메라에 호기심을 갖더라. 아이가 날 찍은 걸 보니 그 시선의 눈높이와 앵글에선 내가 크게 보였다. 아이가 아빠를 이렇게 보는구나 싶었다. 더 듬직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요리엔 관심이 없어도 “라면과 냉동만두와 토스트”가 자신이 몫이라며 “냉동만두와 토스트는 정말 노릇노릇하게 잘 굽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며 웃는 얼굴에선 그저 평범한 아빠의 마음이 배어나왔다. 2009년 10월 자신의 유일한 코미디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개봉을 앞둔 때, 인터뷰에서 그는 “인간 장동건으로서 삶에도 소홀하고 싶지 않다. 남들이 누리는 행복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 그 “삶의 행복”은 먼 데 있지 않아 보였다.

● 장동건

▲1972년 3월7일생
▲1992년 MBC 21기 공채 탤런트,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
▲1994년 MBC ‘마지막 승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입학, 1995년 중퇴
▲1997년 ‘홀리데이 인 서울’로 스크린 데뷔
▲2001년 영화 ‘친구’로 800만 관객 동원
▲2002년 영화 ‘해안선’
▲2004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태극기 휘날리며)
▲2006년 ‘무극’·2010년 ‘워리어스 웨이’·2011년 ‘마이웨이’·2012년 ‘위험한 관계’로 잇단 다국적 활동
▲2010년 5월2일 고소영과 결혼, 1남1녀
▲2012년 SBS ‘신사의 품격’ 등

윤여수 전문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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