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비극과 희극 사이… 묘하게 끌리는 노통브 소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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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빌 백작의 범죄/아멜리 노통브 지음·이상해 옮김/144쪽·1만1800원·열린책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며 유쾌했을까 불쾌했을까.

이 소설은 꽤나 두께가 얄팍하다. 집중하면 1, 2시간이면 끝낼 분량이다. 그런데 자꾸만 읽다가 몇 장씩 되돌아오게 된다. 그리 가물가물할 정도로 복잡한 건 아니다. 왠지 묘하게 질퍽질퍽 발길을 붙잡는 달까. 깜깜한 숲속의 부엉이소리처럼.

벨기에 어딘가 있다는 플뤼비에 성(城). 그곳에 사는 느빌 백작은 요즘 심사가 복잡하다.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나 돈 버는 재주가 없다 보니, 결국 성까지 팔아야 할 처지. 하지만 백작은 사교계에서 언제나 훌륭한 파티 접대로 이름 높은 인물.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가든파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점술가 포르탕뒤에르 부인이 가출한 막내딸 세리외즈를 보호하고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별것 아닌 양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점술가는 보자마자 악담에 가까운 예언을 들려준다. 백작이 파티에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 거라고. ‘최후의 만찬’을 벌이고픈 그에게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고민으로 며칠째 밤잠을 설치는 느빌 백작에게 세리외즈는 더 충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다름 아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노통브의 스물네 번째 소설이라는 ‘느빌…’은 읽는 이를 참 엉거주춤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잔혹동화 같기도, 한바탕 부조리 연극을 감상한 기분도 든다. 솔직히 재미없단 소린 못하겠다. 어디선가 ‘쿵짝쿵짝’ 흥겨운 재즈 가락이 들려오는 듯 리듬감도 절묘하다. 비교적 짧은 소설이 가지는 우화적인 분위기도 세련됐고.

실제로 프랑스 현지에선 ‘비극과 희극이 버무려진 풍자극’이라며 상찬을 받은 모양이다. 2015년 출간돼 19만 부 이상 팔렸단다. 그런데 작가는 어떤 심정으로 이걸 썼을까. 그가 주고픈 메시지는 묵직함일까 경쾌함일까. 왠지 이 소설에서 의구심 한 줄기가 물씬물씬 피어올랐다. “실은 자기도 헛갈리는 거 아냐?” 열혈 팬이 아니라면,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겠다. 원제 ‘Le crime du comte Neville’.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느빌 백작의 범죄#아멜리 노통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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