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떠밀린 트럼프 “인종차별은 惡”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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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우월주의 폭력사태’ 첫 인정… 정치권 등 비판에 한발 물러서
소극적 수습 비판한 CNN 기자에 트럼프 “당신은 가짜뉴스” 발끈
反트럼프 진영 움직임 거세져… NYT “측근 배넌이 사태 키워”

“인종차별은 악이다(Racism is evil).”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유혈 폭력시위 이틀 뒤인 1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일으킨 인종차별 사건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여러 편에서 나타난 증오와 편견”이라며 어물쩍 넘어가려던 첫날 발언에 대해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과 언론, 시민단체 등의 비판이 거세지자 백기를 든 형국이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으로 돌아와 “KKK(큐클럭스클랜·백인 우월주의 단체), 신(新)나치, 백인 우월주의자, 증오단체같이 자신의 이름으로 폭력을 일으키는 이들은 범죄자이며 폭력배”라며 “이들은 미국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혐오 단체”라고 비판했다.

인종차별 공개 비판에도 미국 안팎에서는 트럼프가 여전히 사태 해결에 소극적이고 인종차별을 근절하려는 진정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틀이나 지나 너무 늦었고 메시지도 약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공개 비판 뒤에도 트윗 정치를 통해 백인 우월주의 비판 인사를 공격했다. 미국의 유명 제약회사인 머크의 최고경영자(CEO)이며 존경받는 흑인 CEO인 케네스 프레이저가 트럼프의 소극적인 초기 발언에 대한 항의 표시로 대통령 직속 제조업자문단에서 사퇴한다고 밝히자 트럼프는 14일 오후 트위터에 “(프레이저가 사임 뒤) 바가지 약값을 내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NYT는 지난해 대선 때 트럼프가 KKK 지도자를 지낸 데이비드 듀크의 지지 발언을 곧바로 거부하지 않은 것을 언급하며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을 신속하게 내놓지 않아 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CNN 기자와도 이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14일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행위 조사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곧바로 자리를 뜨려 하자 CNN의 짐 아코스타 기자가 “왜 지난 주말에 증오단체(인종차별 단체)를 비난하지 않았는지 설명해 달라”고 질문하며 논쟁이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비난받았다”고 답했고 아코스타가 “오늘 왜 (질의응답이 오가는) 기자회견을 하지 않느냐”고 다시 묻자 “방금 기자회견을 했다”고 받아쳤다. 아코스타는 “추가 질문을 하겠다”고 말했고 트럼프는 “나는 진짜 뉴스를 좋아한다. 당신은 가짜 뉴스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反)트럼프’ 진영의 움직임도 다시 거세지고 있다. 특히 뉴욕에서 반트럼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가 며칠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머무를 예정이라는 계획이 공개되자 트럼프타워가 위치한 맨해튼 5번가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이들은 플래카드를 흔들며 ‘노(No) 트럼프’ ‘노 KKK’ ‘노 나치’ 등을 외쳤다.

반트럼프 진영의 일부 누리꾼은 샬러츠빌 폭력 시위에 참가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신상 정보 캐기’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맞아,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다’(@YesYoureRacist)란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누군가가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의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면 이들을 아는 누리꾼들이 이름, 직장(학교), 거주지 등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한편 트럼프의 측근 중 한 명으로 극우 인터넷 매체인 브라이트바트를 운영해온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트럼프의 인종차별 시위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NYT 등에 따르면 배넌은 트럼프에게 기존 지지층을 흔들 수 있으니 샬러츠빌 사태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지 말라는 식의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넌은 전 세계적인 비난을 초래한 ‘반이민 정책’을 기획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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