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부동산 보유세 조정의 원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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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안정과 주거복지의 핵심 연결고리는 보유세… 그런데도 8·2대책에서 빠져
보유세 선진화는 모두의 이익, 세금 올리되 주거복지 강화해 조세저항 줄이는게 관건
세수 일부 활용한 양질의 청년 임대주택 건설도… 그 방법의 하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의 부동산 대책과 세제 개편안에는 부동산 보유세가 빠져 있다. 그러나 보유세는 집값 안정뿐 아니라 투자 활성화, 주거복지 등 주요 현안들의 핵심 연결고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부동산을 둘러싼 거시경제 여건을 살펴보자.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생애주기(life cycle) 저축, 즉 노후대비 자금이 대규모로 축적되고 있다. 이 돈들은, 젊은 세대의 생산적 투자에 투입돼 수익을 창출해줘야 선순환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수가 줄었고, 대기업들도 돈을 빌리지 않는다. 비대해진 노후대비 자금과 축소된 젊은 세대 사이의 불균형이 자본수익률의 저하, 즉 저금리와 장기 침체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지금 이 돈들이 수익을 낼 곳은 부동산밖에 없다. 인기 지역 아파트는, 매월 예금금리보다 높은 (임대)소득을 낳아주면서 실질가치도 유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구가 줄어도 지방만 소멸될 뿐 일자리, 입시제도, 공공인프라는 이쪽에 유리할 것이니 희소성이 지켜져 안전하다고들 한다. 반면에 은행 예금은 물가를 생각하면 실질가치도 불안하다.

이런 수익률 체계에서는 좋은 위치의 아파트를 사 모으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개개인의 합리성도 거시적으로는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개념 구분이 필요한데, 집의 구성 요소 중 ‘건축물’은 공급량이 변하는 ‘자본’이지만 건물 밑의 ‘토지’는 공급이 고정된 ‘위치’다. 인기 지역 집값의 큰 부분은 위치 값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위치 값이 높아지면 ‘부’는 늘어도 생산능력은 커지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좋은 위치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지가를 올리면서 생산적 자본 투자를 줄여 자본장비율, 노동생산성, 임금을 낮추고 임대료는 높인다. 미국에선 대도시 주거비가 올라 노동 이동이 제약돼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대추구의 사회적 비용들이다.

따라서 ‘위치’에 이 비용들을 반영한 세금을 부과해서 토지의 사적 수익률을 적정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 생산적 투자를 늘리고 생산성과 임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늘어난 세수로 형평성도 높일 수 있다. 노후대비 자금들과 여기에 편승한 유동자금들이 자릿세 올리는 경쟁이 아니라 청년들의 생산적 자본 창출과 혁신에 쓰이도록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다. 돈의 흐름을 바꾸는 데는 금융 규제도 큰 역할을 하지만 보유세로 자산수익률 체계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낮은 보유세는 주거복지 문제를 개인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는 관행을 보조해준 측면도 있다. 따라서 보유세를 무차별적으로 인상하면 조세 저항이 불가피하다. 이를 감안해서 다음의 원칙을 제안한다.

첫째, 세액공제 등으로 주거복지를 강화해서 결과적으로 다수 국민이 보유세 개편을 주거비 상승으로 느끼지 않게 한다. 세액공제는 납세자 가구당 일정액에 가구원 1인당 일정액을 추가할 수 있다. 공제 혜택이 미미한 저가 주택 소유자들은 주거환경 개선으로, 세입자들은 직간접 주거비 보조로 같은 수준의 지원을 받게 한다.

둘째, 집값의 건축물 부분보다 ‘위치’에 대한 세율의 누진성을 강화한다. 예컨대 건축비 2억 원에 시가 10억 원인 아파트의 경우 위치 값 8억 원에 대해 이것이 커질수록 세율이 높아지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원 배분의 왜곡을 줄이면서 집값의 변동성도 낮출 수 있다. 집값이 오르면 세금이 누진적으로 늘어 수요를 억제하고, 집값이 내리면 거꾸로 수요를 촉진하니 자동 안정화 장치가 된다.

셋째, 세수의 일부를 좋은 위치에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데 사용함으로써 젊은이들의 주거복지를 강화하고, 계층별 주거지 분리 현상도 완화해서 세대 간, 계층 간 상생을 도모한다.

우선은 현행 종합부동산세의 과세표준 시가반영률을 현실화하면서 위 원칙들을 적용하는 방안도 시도할 만하다.

보유세는 자원 배분의 효율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희소 자원인 ‘위치’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국가가 매 ‘시간’ 공권력으로 지켜주는 데 대한 정당한 대가이기도 하다. 그 대신 국가는 주거복지로 모든 국민이 이 땅에 살 권리를 보장해줄 의무가 있다. 축소 지향적인 지대추구 사회로 가는 것보다는 보유세 선진화로 성장을 촉진하고 주거복지도 강화하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이익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부동산 대책#부동산 보유세#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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