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막말 닮아가는 워싱턴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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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비난하던 민주당 의원들, 정치적 주목 받으려 과격발언
“공개석상에서 욕하는게 인기”… 티셔츠에 욕설 담아 판매도
美정치 극심한 양극화 드러내

“트럼프가 지금까지 공약들을 지켰나? 아니다. ×도 안 지켰다(F*** no).”

커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민주·뉴욕)은 6월 뉴욕대 ‘개인민주주의 포럼’ 공개 강연에 나서 작심한 듯 욕설을 사용하며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당시 화제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오타 사건을 거론하면서 “언론을 씹더니(bitching) 말을 다 끝내지 못했던 것”이라며 비속어 사용을 이어갔다. 사회자가 “맨 앞줄에 90세 노모가 앉아 계시는데 몇 마디는 ‘삐’ 소리 처리했으면 좋겠다”며 간접적으로 자제를 부탁할 정도였다.

신예 ‘막말 제조기’로 떠올랐던 앤서니 스캐러무치가 지난달 말 백악관 공보국장직에서 10일 만에 잘리고 ‘막말 본원’ 대통령은 뉴저지로 2주간 휴가를 떠났지만 워싱턴 ‘막말 바람’ 주의보는 여전히 발령 중이다. 질리브랜드 의원처럼 백악관 밖에도 비속어를 정치적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정치인이 많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으로 막말 공격에는 막말로 반격하려는 민주당 정치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일제히 평가했다. 하지만 공화당과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언행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비판에 나섰다.

질리브랜드 의원은 4월 뉴욕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도 “사람들을 도울 생각이 아니라면 ×× 그냥 집에 가야 한다(go the f*** home)”고 말하는 등 한 인터뷰에서 F자 비속어를 세 번이나 사용해 구설에 올랐다. 질리브랜드 못지않게 욕설로 유명세를 치른 의원으로는 초선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민주·캘리포니아)이 있다. 5월 한 팟캐스트 공개방송에 출연해 “건강보험이 없다고 죽는 건 아니다”라는 한 공화당 의원의 발언에 대해 “××, 그게 무슨 소리야(What the f*** is that)?”라고 말한 것. 현장에선 환호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박수를 받았지만 민주당은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보수성향 인터넷매체 데일리콜러는 이들의 최근 발언을 소개하며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공개 석상에서 욕하는 게 인기”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최근 공식 기념품으로 팔기 시작한 티셔츠도 논란거리가 됐다. 민주당은 “공화당은 보통 사람들을 개뿔도 신경 쓰지 않는다(don’t give a sh*t)”는 톰 페레스 민주당전국위원장의 비속어가 섞인 발언을 티셔츠에 담아 홈페이지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해 공화당은 공식 트위터에 “당신들이 저속하게 가면 우리는 고급스럽게 간다”고 말한 미셸 오바마 여사의 발언을 적어 민주당의 언행 불일치를 비꼬았다.

워싱턴 ‘욕설 대결’은 극심한 정치 양극화 시대에 골수 지지층에 어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강력한 비판을 우대하는 분위기에서 정권을 잃은 민주당이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전략은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는 “유세와 인터뷰에서 욕을 하는 것이 진솔하고 ‘쿨’해 보일 수는 있다”면서도 “욕설은 서너 번 듣다 보면 왠지 연습된 듯한 느낌을 준다”며 “그 힘이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다른 설득력 있는 표현들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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