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시인의 섬세한 시선, 옛그림에 생기를 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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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유종인 지음/342쪽·2만4000원·나남

신윤복(1758∼?)의 ‘기방무사(妓房無事)’는 제목부터 의뭉스럽다. 기생의 방에서 아무 일이 없었다는 뜻. 그런데 정작 그림에서 기생의 방에 누운 사내는 기생집 몸종과 얽혀 있다. 이것만으로도 큰일인데, 이 장면을 방주인인 기생에게 들키고 말았다. 보는 사람의 입이 벌어지는 건 기생의 얼굴이다. 외출 나갔다가 막 돌아온 기생은 새침하고 담담한 표정이다. ‘무사(無事)’한 건 기생인 것 같다.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유종인 씨가 조선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화풍, 기법 같은 전문가의 안목 대신에 관객과 눈높이를 나란히 했다. 저자는 연애, 풍류, 음식, 책 등 다양한 키워드로 작품을 풀어준다. 가령 ‘사소함’이라는 키워드로 들여다본 조선 그림들은 다채롭다. 최북의 ‘서설홍청’은 쥐가 붉은 순무를 갉아먹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저자는 설치류의 대표 격인 쥐가 복의 상징인 순무를 갉아대는 것은 복락을 집안에 들여쌓으라는 기원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무 하나 쏠아대는 것이 저 쥐한테는 어쩌면 절체절명의 요긴한 생존이자 생업일 수도 있으니 그걸 바라는 마음에 가만한 긴장이 서리는 것도 가만한 재미라면 재미다”라는 문장에선 시인의 섬세한 시선이 엿보인다.

홍진구의 ‘자위부과’에선 오이를 업고 가는 고슴도치가 나온다. 고슴도치는 ‘오이밭의 원수’로 불리는 동물이다. 저자는 땅만 보면서 가는 고슴도치의 눈빛에 담긴 애틋함을 읽고는 새끼와 배우자가 있는 집으로 가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 어미와 새끼들이 오이에 매달려 물맛을 씹어대는 것을 상상하면서 묘사하는 장면은 뭉클하다. 저자는 이렇게 옛 그림 속에서 오늘의 독자들이 기꺼이 공감할 만한 감상들을 끄집어내 보여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유종인#신윤복#기방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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