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정부 투쟁 선봉에 선 ‘푸틴의 눈엣가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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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딥포커스]러 진보당 대표 알렉세이 나발니


내년 러시아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유일한 대항마로 거론되는 알렉세이 나발니 진보당 대표(41)는 ‘스트롱맨’ 푸틴 대통령의 코털을 자주 건드리는 ‘무모한’ 남자다. 그는 2011년 당시 총리였던 푸틴이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시위(2011∼2012년)를 이끌어냈고, 이번엔 현 정권의 부정 축재 실상을 폭로하며 러시아를 또다시 발칵 뒤집어 놓았다.

26일 서쪽 모스크바부터 동쪽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러시아 전국에서 수만 명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수도 모스크바에서만 7000명(경찰 추산)이 트베르스카야 거리로 몰려 나와 “푸틴은 물러나라” “푸틴 없는 러시아” “푸틴은 도둑” 등의 구호를 외쳤다. 2011∼2012년 반정부 시위 이후 최대 규모다.

이번 시위는 나발니가 2일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촉발됐다. 그는 50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푸틴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공무원 급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초호화 주택 여러 채에 요트, 와이너리 등 10억 달러(약 1조1100억 원)가 넘는 재산을 국내외에 보유하고 있으며, 러시아 신흥 재벌들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처럼 돈세탁을 해 뇌물을 줬다고 폭로했다. 동영상은 조회수 1200만 건을 돌파할 만큼 큰 관심을 끌었다.

나발니가 “26일 러시아 전역 99개 도시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자”고 촉구하자 분노한 국민은 주요 도시별로 수백∼수천 명이 길거리로 나와 부패 척결을 외쳤다. 메드베데프 총리의 초호화 주택에 오리만을 위한 집이 따로 있다는 고발 내용을 풍자해 시위자들은 노란 러버덕 인형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번 시위가 허가를 받지 않은 시위라며 700여 명을 체포했다. 나발니는 모스크바 중심부 시위장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체포돼 경찰 버스에 실려 구치소로 압송됐다.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이 몸으로 경찰 버스를 막아서며 저항하기도 했다. 나발니는 체포된 후 트위터를 통해 “트베르스카야 거리를 계속 걸으면서 부패와 싸워 달라”고 호소했다.

변호사인 나발니는 2008년부터 블로그에서 러시아의 국영 가스·정유 에너지 기업의 부정부패를 고발해 일약 소셜미디어 스타로 떠올랐다.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푸틴이 밀던 세르게이 소뱌닌 당시 시장과 맞붙어 패했지만 27%의 지지를 얻어 정치 거물로 자리매김했다.

푸틴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나발니는 늘 암살 위협에 시달려 왔다. 그는 20일 러시아 중부의 작은 도시인 바르나울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갔다가 누군가가 얼굴에 녹색 액체를 끼얹고 도주하는 사고를 당했다. 액체가 독극물이 아니었다는 게 밝혀지자 태연하게 녹색 얼굴을 촬영해 트위터에 올릴 만큼 그는 배포가 크다. 이후 녹색 얼굴은 반(反)푸틴 전선의 상징이 돼 이번 시위에서도 많은 사람이 녹색 얼굴을 하고 나왔다.

그는 내년 대선에 도전할 계획이지만 2013년부터 진행 중인 주정부 산하 공기업 관련 횡령 사건 재판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그는 지난달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5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현재로선 대선 출마가 어려운 상태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푸틴#러시아#알렉세이 나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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