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왕용범 “인간 내면의 밑바닥 들여다봤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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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밑바닥에서’ 연출가 왕용범
힘들던 시절 떠오르는 작품, 배우들 숨소리까지 전하려… 일부러 소극장 공연 택해

왕용범 연출가는 “‘밑바닥에서’는 날것 그대로의 저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창작의 영감을 어떻게 얻는지 묻자 “오전 7시에 잠들어 낮 12시쯤 일어난다. ‘그분’은 새벽에 오셨다 아침이 되면 가시더라”며 웃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왕용범 연출가는 “‘밑바닥에서’는 날것 그대로의 저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창작의 영감을 어떻게 얻는지 묻자 “오전 7시에 잠들어 낮 12시쯤 일어난다. ‘그분’은 새벽에 오셨다 아침이 되면 가시더라”며 웃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과거의 나를 불러내 숨결을 다시 불어넣은 것 같아요. 초심을 많이 찾게 됐어요.”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밑바닥에서’에 대해 말하는 왕용범 연출가(43)의 눈은 설렘으로 반짝였다. ‘프랑켄슈타인’ ‘잭 더 리퍼’ ‘삼총사’ 등 대극장 뮤지컬을 꾸준히 선보이며 뚜렷한 색깔을 구축한 그는 소극장으로 돌아와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최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간절했는데 마음의 고향인 대학로에 와서 위안을 받고 있다”며 미소 지었다.

막심 고리키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그가 다시 만든 이 작품은 2005년 초연돼 호평을 받았다. 배경은 여인숙에서 선술집으로 바뀌었다. 백작을 대신해 감옥에 갔다 출소한 페페르, 병든 동생을 돌보며 술집을 운영하는 타냐, 알코올 중독자인 전직 배우 등의 앞에 새 종업원 나타샤가 등장하면서 이들의 마음에 희망이 꿈틀댄다. 하지만 이내 더 거센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2007년 공연 후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밑바닥에서’는 처절함과 슬픔, 처연한 웃음이 밀도 높은 연기와 어우러진 옹골찬 작품이다.

“대학(서울예대 연극과) 시절 연극으로 만들면서 완전히 사로잡힌 작품이에요. 극한 상황에서도 인생의 답을 찾아가려 몸부림치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느껴졌죠.”

어려웠던 가정사와도 겹쳐졌단다. 외환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면서 그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전단 돌리기, 무대 조명 아르바이트, 우편물 접기 등 안 해본 게 없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셨고, 연극을 하고 싶어 했던 동생은 ‘돈은 내가 벌 테니 형은 연극 해’라며 길을 비켜줬어요. 너무 고맙고 지금도 가슴에 사무쳐요.”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인생은 살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단다. 그 마음을 고스란히 이 작품에 쏟아냈다.

“가난의 밑바닥보다는 인간 내면의 밑바닥을 더 비추려 했어요. 배우들의 에너지는 물론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 200석이 채 안 되는 학전블루를 택했어요.”

과거 이 작품을 하며 아내가 된 배우 서지영을 만났기에 더 각별하단다. 그는 앞으로 10년간의 일정이 꽉 짜여 있다. 8월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는 창작뮤지컬 ‘벤허’를 초연한다.

“한 작품을 만드는 데 3년 정도 걸려요. 배경이 되는 나라를 다녀오고, 해당 시대에 대한 역사, 문화, 생활상 등 관련 책을 모조리 찾아봐요.”

요즘은 로마와 기독교의 역사,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 이스라엘 관련 책 등을 보고 있다.

“작업하고 나서 조금이라도 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죄스러워요. 끝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게 공연이니까요. 고정된 시선을 깬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을 때면 신선한 자극을 받아요. 아, 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절대 알 수 없는 게 딱 두 가지더라고요. 여자와 관객 마음요.(웃음) 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며 작품을 만들려고 해요.”

최우혁 김지유 서지영 이승현 등 출연. 5월 21일까지. 6만 원. 02-1544-1555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밑바닥에서#왕용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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