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韓 셰프, 미쉐린 가이드 프랑스 편서 ‘☆’을 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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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인의 미식견문록
리옹 ‘르 파스탕’ 이영훈 셰프

1년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미식 평가서 ‘미쉐린 가이드’의 프랑스 편에 한국인 셰프가 별을 받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한국인이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그것도 본토인 프랑스에서 별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올해 2월, 2017년 가이드가 다시 발표됐고 셰프는 별 하나를 유지하며 한 번의 행운이 아닌, 프랑스가 주목하는 차세대 기대주로 자리를 굳혔다. 주인공인 이영훈 셰프를 프랑스 리옹에 있는 그의 레스토랑 ‘르 파스탕(LE PASSE TEMPS)’에서 만났다.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셰프는 마침 스태프 식사를 막 끝내고 런치 서비스를 준비하려던 찰나였다. 넓지 않지만 장식이 절제되어 정갈하고 모던한 공간. 밝고 따스한 색깔의 나무 테이블 사이로 셰프가 인사를 건네왔다.

[1] 가볍게 데친 굴 타르타르와 송어알, 콜라비, 모과퓨레, 훈연 생선크림, 딜 오일.[2] 깨크림을 넣은 미니 슈.
[1] 가볍게 데친 굴 타르타르와 송어알, 콜라비, 모과퓨레, 훈연 생선크림, 딜 오일.
[2] 깨크림을 넣은 미니 슈.
프랑스 현지에서 프렌치 요리로 미쉐린 스타를, 그것도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를 거머쥔 주인공은 시원시원하면서도 유쾌한 어조를 가지고 있었다. 반짝반짝 힘이 있는 눈빛을 마주하며 ‘르 파스탕’ 얘기부터 시작했다. ‘르 파스탕’은 이영훈 셰프의 첫 레스토랑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한국관광대 호텔조리과를 졸업한 그는 리옹의 폴 보퀴즈 요리학교(폴 보퀴즈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본떠 설립한 요리학교)로 유학을 온 것이 해외 경험의 시작이었다. 졸업 후 약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4년 4월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2016년 2월에 미쉐린 스타를 획득했으니 오픈하고 1년 남짓 만에 평가단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셈이다.

―‘르 파스탕’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프랑스어로 ‘기분전환’이라는 의미이다. 음식으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자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다.”

―다른 오너 셰프 밑에서 수련한 기간이나 해외 경험이 비교적 짧은 편이다. 학교 졸업 후 곧바로 자신의 레스토랑을 오픈한 계기는 무엇인가.

“폴 보퀴즈 요리학교를 다니면서 폴 보퀴즈 레스토랑(미쉐린 별 3개를 유지하고 있는 리옹의 대표적인 레스토랑)에서 스타주(수련 요리사)를 병행했는데, 10년 넘게 근무한 수 셰프가 알자스 지방의 잘 알려지지 않은 호텔 레스토랑으로 이직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10년 뒤, 20년 뒤를 상상하게 됐다. 또 유럽에서 일본인 셰프의 프렌치 레스토랑이 인정받는 것을 보고 틈틈이 찾아가 맛을 보았는데, 한국인으로서도 도전하고 싶은 자극을 받았다.”

―낯선 이국 도시에서 첫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힘들었을 텐데….

“솔직히 ‘도전하라’고 권장하지는 못하겠다. 그만큼 쉽지 않았다. 한국인과의 교류나 이해도가 낮은 점도 극복해야 할 도전 과제 중 하나다.”

음식 산업으로는 ‘유럽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리옹은 미식의 도시로 불린다.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 살아 있는 전설, 키친의 교황 등 수식어만으로도 존재감이 남다른 전설적인 셰프 폴 보퀴즈를 낳은 도시이며 레스토랑 개수만도 2800여 개에 달한다. 이 중 70% 이상이 자체 브랜드를 내걸고 영업하고 있으며, 프랜차이즈 비중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2016년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17곳(3개 1곳, 2개 2곳, 1개 14곳)으로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도시다.

―리옹을 선택한 이유는….

“유학을 와서 몇 년 있었던 곳이니만큼 시장도 잘 알고, 익숙한 도시라는 이유가 크다. 리옹이 미식의 도시라고는 하나 클래식한 편이다. 그만큼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해 이곳에 새로운 변화를 던져보자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달라. 학교에서도 요리 성적이 좋았나. ‘맛’에 대한 감각이 좋다거나 소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었나.

“솔직히 말하겠다. 학교의 실습 평가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별로 없다. ‘맛’에 대한 기억이나 감각이 좋은 편이다. 음식의 간에 대해서도 많이 예민하다. 한 번만 맛보면 같은 맛을 잘 따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프랑스에 와서 살면서 배운 음식이나, 다른 레스토랑에서 경험한 것들이 내가 가진 장점과 어우러져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2800개 레스토랑 중 새로운 또 하나의 레스토랑으로 도전할 때 콘셉트에 대한 고민이 많았겠다.

“리옹 사람들은 리옹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파리보다 역사 깊은 미식 도시라는 자부심이 크다. 그만큼 미쉐린을 떠나서 유명한 레스토랑이 많다. 그래서 클래식한 요리로 도전할 필요는 못 느꼈다. 리옹 사람들도 리옹 음식은 조금 ‘무겁다’라고 표현하는데, 그래서 가벼움을 가미한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다. 이 점을 손님들이 알아준 것 같다.

내가 한국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맛’의 요소에 한국적인 면이 없지 않은데, 이런 특징이 맛보는 이들에게 ‘긍정적’으로 전달된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신맛이 나는데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신맛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떻게 낸 신맛일까? 무엇을 썼을까?’ 하며 손님들이 궁금해하고 재미있어 한다. ‘정통이 아니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좋은 변화로 받아들였다.”

―‘한국적인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시그니처 요리인 ‘멸치육수와 푸아그라’가 대표적이다. 팬에 구운 푸아그라 요리에 간장으로 맛을 낸 멸치육수를 부어 먹는 요리다. 김가루도 들어간다. 간을 맞추는 식재료로 간장을 즐겨 사용한다. 프랑스에서는 원래 소금 간 대신 재료 자체의 짠맛을 선호하는데, 나는 간장의 짠맛을 즐겨 가미한다.

처음부터 한국적인 요소를 많이 넣기보다는 하나 정도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는데 그 결과 탄생한 요리다. 지금 또 새로운 것을 구상 중이다. 이렇게 하나씩 새롭게 보여주다 보면 나중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코스 메뉴 하나를 따로 만들어서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과 프랑스인의 미각이 다른데 그들이 좋아할 맛의 밸런스를 얻기까지 시행착오는 없었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만한 음식의 간을 결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으로 모든 간이나 맛의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그냥 나 자신을 믿고 가야 하지 않을까….”

[3] 이영훈 셰프가 오픈한 ‘르 파스탕’의 실내.
[3] 이영훈 셰프가 오픈한 ‘르 파스탕’의 실내.
‘르 파스탕’의 스태프는 총 8명.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한국인이다. ‘우리끼리 뭔가를 보여주자’는 각오가 있었다고 한다. 이국 땅 낯선 도시에서 경험도 없던 셰프가 한국인으로만 구성한 팀과 도전에 나선다는 것.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면 흉내도 내기 어려울 일이다. 당찬 셰프에게 ‘보상’처럼 미쉐린 별 하나가 주어졌고, 1년 후인 올해 미쉐린 스타 발표에서도 그 위상을 유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 1년간 심리적 압박감은 없었는지….

“지난해 처음 받을 때에는 한 번 받았으니 그걸로 만족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기쁘면서도 걱정이 많았다면 올해는 손님들로부터 ‘르 파스탕, 잘한다. 가치가 충분하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미쉐린 스타에 대한 현지 반응은 어땠나.

“이렇게 관심이 높은지 나도 미처 몰랐다. 지난해 2월 1일에 발표가 났다. 2일에 출근을 하는데 동네 할아버지가 아침에 뉴스에서 봤다면서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네 왔다. 알랭 뒤카스, 장 프랑수아 피에주 등 2스타, 3스타 셰프들에게서도 축하 카드를 많이 받았다. 1스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인근 셰프들로부터는 진심 어린 격려도 많이 들었다. 스타를 못 받을 때의 충격에 굴하지 말고 하던 것을 그냥 열심히 하라, 너무 힘들게 애쓰지 말고 지금처럼 하라는 좋은 격려였다. 그들이 존중하는 미식 문화의 일원으로 환영받는 기분이었다.”
[4] 자신의 레스토랑인 프랑스 리옹 ‘르 파스탕’ 앞에 서 있는 이영훈 셰프.
[4] 자신의 레스토랑인 프랑스 리옹 ‘르 파스탕’ 앞에 서 있는 이영훈 셰프.
셰프를 인터뷰하던 날은, 마침 리옹에서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요리대회 ‘보퀴즈 도르’를 막 마친 시점이었다. 이영훈 셰프는 보퀴즈 도르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전야제 디너’에서 카나페를 의뢰받아 요리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셰프 18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각 코스를 여러 명이 맡아 요리하는 방식이다. 이런 시간을 통해 대선배부터 새로운 후배까지 서로를 위해 요리를 준비하고, 식사를 즐기며 전통과 관계를 다져간다. 그 안에 이제 갓 막내로 일원이 된 이영훈 셰프가 있었다.

[5] 대구, 구운 사보이 양배추, 배추퓨레, 조개, 조개육수 버터소스. 바앤다이닝 이재훈 제공
[5] 대구, 구운 사보이 양배추, 배추퓨레, 조개, 조개육수 버터소스. 바앤다이닝 이재훈 제공
어느새 런치 서비스 시간이 훌쩍 다가왔다. 셰프는 못다 한 얘기를 뒤로 하고 서둘러 한국어가 들려오는 주방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전에 대한 책임, 관심에 대한 각오. 이런 것들로 매일이 분주할 테지만 이영훈 셰프에게는 이미 여러 가지 소망이 있었다. 한국에도 새로운 레스토랑을 열고 싶고, 리옹이 아닌 파리에서도 열고 싶고, 지금의 요리 가격보다 저렴하게 낮춰 동네 분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동네 식당도 열고 싶다고….

셰프의 유쾌하고 시원한 말투와 반짝이는 눈빛처럼 그의 소망이 시원하게 이루어지고 반짝이는 맛으로 세계와 소통하기를 희망한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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