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의, 이혜영에 의한, 이혜영을 위한 작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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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아’

메디아(오른쪽)가 두 아들을 안고 있는 남편 이아손에게 크레온 왕의 딸과 결혼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메디아(오른쪽)가 두 아들을 안고 있는 남편 이아손에게 크레온 왕의 딸과 결혼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이혜영의, 이혜영에 의한, 이혜영을 위한’ 작품이었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메디아’는 이 씨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그는 사랑을 위해 조국까지 버렸지만 남편 이아손(하동준)이 크레온 왕(박완규)의 딸과 결혼하기로 하자 광기 어린 분노에 휩싸인 메디아를 연기하며 특유의 센 에너지를 뜨겁게 분출한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암사자 같다. 고통, 절망으로 점철된 상황에서도 이아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린 내면을 드러내는가 하면 고혹적인 자태로 유혹한다. 그럼에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침착하려 애쓰며 처참한 복수를 계획한 후 하나씩 차례로 실행할 때는 지독할 정도로 차갑다. 두 아들을 죽이기 전 고뇌하는 모정을 절절하게 토해내는 등 극한의 감정들을 자유자재로 뿜어내며 원숙한 연기력을 입증해 보였다.

메디아의 감정을 대변하거나 때로 동정하고 비난하는 코러스는 극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메디아와 두 아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는 이아손의 행동은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하지만 극은 메디아가 두 아들을 죽이며 정점을 향해 치닫는 순간 힘없이 무너지며 서둘러 끝을 맺는다. 치를 떠는 이아손을 향해 메디아가 죽기 전 외친 한마디 “속상해?”는 극을 떠받치기에는 너무 가볍다. 남명렬(아이게우스 역) 등 관록 있는 남자 배우들의 비중이 작아 이 씨에게 지나치게 기댄 구성도 아쉽다. 4월 2일까지, 2만∼5만 원, 1644-2003. ★★★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혜영#연극 메디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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