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KOVO의 ‘셀프징계’, 꼬리만 자르면 반성인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2월 17일 05시 30분


1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6~2017 V리그’ 남자부 한국전력과 대한항공 경기에서 한국전력 강민웅이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민소매 유니폼을 입고 나와 경기감독관의 제지를 당하자 유니폼을 겹쳐 입고 경기에 출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부정 선수로 간주되어 교체되고 11점 감점을 당했다. 계양 | 김종원기자 won@donga.com
1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6~2017 V리그’ 남자부 한국전력과 대한항공 경기에서 한국전력 강민웅이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민소매 유니폼을 입고 나와 경기감독관의 제지를 당하자 유니폼을 겹쳐 입고 경기에 출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부정 선수로 간주되어 교체되고 11점 감점을 당했다. 계양 |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한국전력 강민웅(32)의 부정유니폼에서 촉발된 ‘11점 삭제’ 사건에 관한 16일 상벌위원회는 곧 한국배구연맹(KOVO)의 착잡한 현실이다. 상벌위원회는 ‘문제의 14일 대한항공-한국전력전에서 파행을 일으킨 1차적 책임자인 박주점 경기감독관에 대해 2016~2017시즌 잔여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가했다. 주동욱 심판감독관, 최재효 주심, 권대진 부심에게도 출장정지와 벌금을 부과했다. 얼핏 보면 KOVO가 일벌백계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전력의 1세트 ‘11점 지우기’에 책임라인에 있는 신원호 KOVO 사무총장, 김형실 경기운영위원장, 서태원 심판위원장은 ‘엄중한 경고’만 받았을 뿐이다. 특히 3인은 16일의 상벌위원들이었다. “(자신들의 귀책사유가 걸린 안건에 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이해관계가 걸린 안건이 올라갔을 때 비밀투표를 한 것도, 당사자가 회의장 밖에 나가있지도 않았다. 신 총장은 “김 위원장, 서 위원장이 더 강한 징계를 자청했다”고 밝혔으나 상황으로 봤을 때, ‘셀프징계’의 의구심을 피하기 어렵게 된 셈이다.

그 근거는 긴급 상벌위원회에서 강민웅의 부정 유니폼을 캐치하지 못한 감독관들과 심판진의 잘못은 엄격히 묻되, 명시적 규정에 근거하지 않고, 11점을 지우는 훨씬 중대한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정당했다”고 ‘셀프 면죄부’를 줬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상벌위원회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의심하자는 것이 아니라 배구 규정 관련 사안은 두 위원장의 발언권이 강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당했다”면서도 KOVO는 “최상위기관인 국제배구연맹(FIVB)에 질의를 통해 확인절차를 밟겠다”는 자기모순을 보도자료로 알렸다. 한마디로 ‘정당한 것 같긴 한데 우리도 우리를 못 믿겠으니 FIVB에 물어 보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것이 프로배구 V리그를 운영하는 주체인 KOVO의 수준이라면 낭패다.

결국 16일의 상벌위원회는 가장 핵심인 11점 삭제에 따른 책임소재를 묻지 않은 채 끝났다. FIVB의 유권해석에 따라 상벌위원회가 또 열릴 소지가 남은 것이다. 이에 대해 신 총장은 “예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FIVB의 유권해석을 원하는 대로 끌어내고픈 KOVO의 간절함(?)이 간파된다. KOVO는 ‘명확한 규정이 없고 유사사례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보도자료에 써놨음에도 “정당하다”고 일단 버티고 있는 것이다. 구자준 총재와 신 총장의 레임덕이 온 상황에서 이런 어정쩡한 처신까지 빚어졌다. 한국배구의 위신은 FIVB가 ‘KOVO는 이런 해프닝조차 처리 못하고, 별 이상한 것을 물어 본다’ 식으로 바라봐도 할말 없는 국제적 망신에 이르게 될 판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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