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4대강 흑묘백묘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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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상훈 경제부 차장
댐은 끝내 다시 바닥을 드러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상류 바닥은 바싹 말라붙었다는 표현으로 부족했다. 물길이 끊긴 하천에는 잡초만 가득했다. 4년째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는 충남 보령시의 모습이다.

김정남 피살, 구제역 등 큰 뉴스에 밀려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지만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이슈가 있다. 바로 가뭄이다. 보령을 비롯한 충남 서북부 지역의 물 상황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보령의 이달 강수량은 0.3mm에 그치고 있다. ‘비가 몇 방울 왔는지 셀 수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지난달까지 합쳐 올해 총강수량은 15.1mm에 불과하다. 최근 30년간 1, 2월 합계 전국 평균 강수량(56.6mm)의 26.7% 수준이다. 최근 1년간 누적 강수량이 800mm가 안 되는 곳은 전국에서 보령(766.3mm)이 유일하다. 전국 지난해 평균 강수량(1232.1mm)에도 크게 못 미친다.

보령 가뭄은 충남 서북부 전체에 영향을 준다. 보령댐이 이 지역 8개 시군(당진 보령 서산 서천 예산 청양 태안 홍성)의 물 공급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령댐 저수율은 15일 18.7%까지 떨어졌다. 42년 만의 최악의 가뭄을 겪었던 2015년 11월의 저수율 최저치 기록(18.9%)을 1년 3개월 만에 갈아 치웠다.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지만 국토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 충남도 등 관계기관들은 믿는 구석이 있다. 금강 백제보와 보령댐을 잇는 21.9km의 도수로다. 지난해 초 완공한 것으로 4대강 사업 때 지은 보에 확보한 물을 보령댐에 하루 최대 11만5000t 공급한다. 하늘만 바라봐야 했던 2015년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4대강 보에는 1년 내내 강물이 넘친다.

녹조로 인한 수질 악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최근 4대강 보의 방류 한도를 확대한 것을 두고 야당과 일부 언론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4대강 실패 선언’ ‘22조 원 낭비 참사’ ‘대국민 사기극’ 등 자극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 백제보 도수로 활용 사례만 쏙 빼놓고 ‘4대강으로 가뭄에 버틴다는 말은 근거가 없다’며 사실을 왜곡하는 보도까지 나온다.

정부도 4대강 활용을 애써 부각하지 않는다. 전임 정부 사업이라는 이유로 현 정부는 2015년 가뭄 전까지 4대강이라는 단어를 금기어로 취급하며 공식 문서에 사용하지 않았다. 1년여 전까지 온 나라에 가득하던 충남 서북부 가뭄에 대한 근심이 백제보 도수로 하나로 풀렸지만 그 흔한 공치사 하나 찾기 어렵다.

일각에선 녹조로 오염된 물을 활용하는 건 환경적으로 옳지 않다는 비판을 한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사람이 급한 대로 비상식량을 먹었더니 “왜 몸에 좋은 웰빙푸드를 섭취하지 않았느냐”며 혼내는 격이다. 연간 90억 원이 들어가는 도수로 운영비가 낭비라는 목소리도 있다. 현장을 외면한 지적이다. 충남의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수도 끊긴 집에서 일주일만 살아보라고 해라. 세수, 설거지도 못 하며 사는 고통을 알기나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4대강 사업으로 물을 확보한 건 이명박 정부였지만 이 물을 쓰자며 도수로 사업을 제안한 건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행정기관과 지역 현장은 진즉에 이념 논쟁에서 벗어났다. 가뭄 해결 책임이 없는 정치권과 현실을 모르는 일부 세력만 4대강에 이념 딱지를 붙이며 편 가르기 싸움을 한다. 4대강 물에 의존하는 주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에는 진보, 보수가 없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중국 덩사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처럼 어떤 물이든 가뭄만 해결하면 된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4대강#보령 가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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