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小해운사 대출 조이기에… 선박발주 11조 지원 헛바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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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비 80% 저리대출’ 시행에도 대출한도 200억… 1척 발주하면 끝
심사도 까다로워 발주 줄줄이 취소
수협 “대출 위험 커… 제도 손봐야” 해수부 “은행-업체 상생방안 고민”

“선박 만들려고 발주해 놓은 자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부산 영도구에 있는 대선조선 직원들은 요즘 비어있는 선대(船臺·선박 건조장)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160억 원 규모의 스테인리스 화학운반선 수주 계약을 따냈을 때만 해도 조선소엔 활기가 돌았다. 선박을 만드는 데 쓸 스테인리스를 발주하고 배를 지을 자리까지 비웠다.

하지만 발주한 국내 해운사가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위기가 됐다. 21세기조선, 신아에스비 등 경쟁 중형 조선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아 현재 국내에서 스테인리스 화학운반선과 참치선망선(대형 그물로 참치를 어획하는 배)을 건조하는 회사는 대선조선이 유일하다.

해양수산부는 사고 위험이 높은 노후 선박 교체를 유도하고, 불황으로 위기에 빠진 해운 및 조선업체들을 돕기 위해 ‘연안선박 현대화 이차보전 사업’을 하고 있다.

해운사가 국내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하고 총사업비의 80% 안에서 금융 대출을 받으면 전체 이자 중 2.5%를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다. 해운사는 15년에 걸쳐 원금을 상환하면서, 1% 미만의 이자만 부담하면 된다. 올해 사업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한 1250억 원 정도다.

하지만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해운사들이 조선사와 맺은 발주 계약이 최근 줄줄이 취소 위기에 놓이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주협약 금융기관인 수협은행이 대출 한도를 200억 원 안팎으로 정하고, 해운·조선업 같은 취약업종의 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척당 100억∼200억 원대인 중형 선박 건조 비용을 감안하면 상당수 해운사는 한 척만 발주해도 두 척째부터는 대출 문턱에 걸리게 된다.

대선조선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받는 해운사와 수주 계약을 맺어 안심했는데 이제 와서 대출이 막혀 물거품이 된다고 하니 황당하다. 수주가 무산되면 잠정 피해액이 68억 원”이라고 말했다. 해운·조선업계에 따르면 해수부의 지원 대상이 되고도 지난해 수협의 여신 한도에 막혀 중소 해운사 7곳이 추가 선박 발주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가운데는 ‘여신 조이기’를 하는 국내 은행을 피해 대출 이자가 더 낮고 조선사가 선박 건조를 보증하는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도 수월한 일본 조선사로 일감을 돌리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거영해운 관계자는 “내년에 선박 2척을 일본 조선소에 발주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정부가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2020년까지 11조 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 250척 이상 선박 발주를 유도하기로 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해운·조선업 정책이 헛바퀴만 돌고 있는 것이다.

반면 수협은 금융 논리와 맞지 않는 지원 제도에 불만을 나타냈다. 수협 관계자는 “대출 기한이 15년이나 되는데 누가 돈을 빌려줄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현실화되기엔 하자가 있는 지원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해수부와 해운조합에 의견을 제시해 놓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수부 측은 해양보증보험의 대출보증 등을 이용해 시중은행의 리스크를 분산시켜 주는 등의 수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운·조선업 상생을 위한 취지인데 관련 업체들의 불만이 많아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금융당국, 해운조합 등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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