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습한데 건조기능 써볼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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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인식 겨우 알아듣던 세탁기, 인공지능과 만나면…
개발자들이 말하는 AI의 미래

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LG트윈타워에서 만난 LG전자 H&A사업본부의 김락용 수석연구원, 한동우 선임연구원, 송태엽
 선임연구원(왼쪽부터)은 “인공지능(AI)은 이용자와 제품이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LG전자 제공
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LG트윈타워에서 만난 LG전자 H&A사업본부의 김락용 수석연구원, 한동우 선임연구원, 송태엽 선임연구원(왼쪽부터)은 “인공지능(AI)은 이용자와 제품이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LG전자 제공

달리는 기차 위에서 악당과 사투를 벌인다. 지원 요청을 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려 했지만 ‘아차’ 떨어뜨리고 만다. 주인공은 외친다. “본부, 본부!” 그러자 휴대전화가 스스로 전화를 건다. 똑똑한 휴대전화 덕분에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은 말한다. “이제 말로 거세요.”

이 휴대전화 광고가 TV에서 방영되자 사람들은 크게 환호했다. 목소리만으로 모든 디지털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금방 올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본부’라는 육성을 미리 녹음해 두면 그 음성만 비교해 전화를 거는 아주 단순한 기능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현재 인공지능(AI)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광고를 기술의 발전 속도와 사람들의 기대치를 너무 벌려놓은 사례로 꼽는다. 사실 이 광고에 나온 기능은 꼭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첫발을 내디딘 상태다. AI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LG트윈타워에서 LG전자의 AI 개발자 3명을 만나 궁금증 해결에 나섰다.

○ 사람 같은 제품이 최종 목적

1991년부터 LG전자에서 AI를 연구한 김락용 수석연구원은 “가전제품이 사람과 자연을 닮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AI다”라고 했다. 단순히 기계적인 진화가 제품 경쟁력을 결정짓는 시대는 끝났다는 뜻이다. 김 수석연구원은 “바람으로 치면 기계적인 고정, 회전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연 바람처럼 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어컨에 AI가 결합하면 찬 바람이 가지 않아도 될 곳을 스스로 구분한다. 빠른 시간 안에 실내온도를 낮추고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것은 ‘기계적 진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용자가 사는 공간과 생활패턴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사람 같은 기계’가 된다.

AI가 작동하는 방식 역시 사람과 유사하다. 오감으로 주변을 파악하듯 수십 개의 센서가 주변을 학습(인지)한다. 학습 정보가 쌓이면 양질의 정보로 가공(추론)한다. 그러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 작동(행동)한다. 한동우 선임연구원은 “느끼고, 배우고, 행동하는 과정을 거치면 이용자는 ‘이 제품이 나를 이해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용자와 교감하는 AI

AI 개발자들은 제품이 마치 사람처럼 능동적으로 행동하려면 인지, 추론, 행동 외에도 ‘교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음성으로 제품을 조작해도 이용자와 제품 사이에 교감이 없다면 기계적 진화에 그친 반쪽짜리 AI라는 뜻이다. AI 산업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가전제품들이 이용자와 교감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주로 음(音)이나 향(香)을 이용한 ‘편법’에 가까웠다. 제품을 작동했을 때 ‘띠리링’ 기계음이 아닌 사람 목소리가 나오거나 에어컨에서 아로마향이 나오는 등이다. 이는 제품의 일방향 소통에 불과했다.

AI 산업은 제품과 이용자가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을 때 성장속도가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LG전자 송태엽 선임연구원은 “수십 가지 기능을 가진 세탁기라도 대부분은 ‘표준’이나 ‘급속’만 사용한다. AI는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다. 실제 AI 기능이 있는 제품은 탑재된 기능과 고객 상태를 이해해 맞춤형 기능을 추천한다. “요즘 날씨가 너무 습한데 건조 기능까지 써보는 것은 어떠세요?”라는 질문도 가능해진다.

국내외 가전업체들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이 AI를 탑재하고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면 각각의 제품이 사람처럼 느껴지고 마음을 나누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진심으로 예쁨 받는 제품’이 나올 것이란 뜻이다. 2014년 개봉한 영화 ‘허(Her)’는 인공지능 비서와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을 그렸다. 기술과 상상의 눈높이가 맞춰지는 시대가 올해는 올 수 있을까.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ai#인공지능#세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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