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초만에 “치근낭종이군요”… 족집게 AI의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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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지금 AI 혁명 중”

10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김태규 OBS코리아 전무가 인공지능 X선 판독 소프트웨어를 시연하고 있다. 의사가 물혹이 있다고 지목한 위치(왼쪽 모니터)와 인공지능(AI)이 찾아낸 위치(오른쪽 모
니터)가 일치한다. 김 전무는 현재 진단 정확도가 96.6%라고 밝혔다. 성남=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10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김태규 OBS코리아 전무가 인공지능 X선 판독 소프트웨어를 시연하고 있다. 의사가 물혹이 있다고 지목한 위치(왼쪽 모니터)와 인공지능(AI)이 찾아낸 위치(오른쪽 모 니터)가 일치한다. 김 전무는 현재 진단 정확도가 96.6%라고 밝혔다. 성남=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대형 모니터에 한 환자의 치아를 X선으로 연속 촬영한 파노라마 사진이 나타났다. 2015년 3월 서울대치과병원에서 촬영된 이 사진엔 “36, 37번 치아(오른쪽 아래 어금니) 아래에 치근낭종(물혹)이 관찰된다”는 담당 의사의 소견이 달려 있었다. 의료용 인공지능(AI) 스타트업 OBS코리아의 김태규 전무가 이 사진을 AI 소프트웨어에 입력하니 6초 만에 인간 의사가 가리킨 곳과 똑같은 곳에 빨간색 박스가 그려졌다. 치근낭종이라는 뜻이다.

○ 치과용 AI로 외화벌이까지

의료용 AI가 머지않아 인간 의사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할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10일 OBS코리아와 서울대치과병원이 공동 개발 중인 치과 X선 판독용 AI ‘자비스’(내부명·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AI 비서 이름)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시연해 봤다. 시연 대상은 치아 뿌리, 모세혈관, 함몰된 치아의 주변 등에 낭종이 생겼다고 진단받은 환자 20명의 X선 사진이었다. 거짓 양성 진단을 검증하기 위해 정상인 사진 5장도 섞어 넣었다. 전부 자비스가 학습한 적이 없는 사진들이다.

자비스는 사진을 입력하는 족족 인간 의사가 짚어낸 것과 똑같은 부위를 질환으로 지목했다. 먼저 기존에 낭종 환자 5000여 명의 X선 사진으로 학습한 것과 유사한 형상이 나타나면 이를 탐지해 ‘이상부위’로 표시하고, 이를 치아의 배열과 잇몸, 턱뼈 등 구강 구조와 대조해 병변의 위치를 기록하는 방식이다. 일반 노트북으로 실행하면 적어도 6시간이 걸릴 작업이지만 슈퍼컴퓨터가 계산을 대신 한 뒤 결과만 클라우드 방식으로 전송하기 때문에 5∼9초면 판독 내용을 받아볼 수 있다.

시연 결과 자비스는 환자 사진 20장 중 18장에서 낭종의 위치를 정확히 맞혔다. 1장은 촬영 시 사진에 남은 얼룩이 병변과 겹쳐 X선만으로는 낭종을 판독하기 어려운 경우였다. 나머지 1장에선 인간 의사가 가리킨 병변 2개 중 1개를 맞혔다. 정상인 환자 5명의 사진은 전부 “이상이 없다”고 정확히 결론 내렸다. 개발진은 자비스가 인간 의사와 달리 병변의 색상, 환자와의 면담 기록 등은 참고하지 않고 순수하게 X선 사진만으로 이 정도 정확성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자체 평가했다.

OBS코리아는 이르면 6월 서울대치과병원의 중국 환자 협진 프로그램에 자비스가 도입되도록 성능을 보완 중이다. 치과 의술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현지에서 X선 사진을 보내오면 서울대치과병원 의료진과 자비스가 함께 판독한 결과를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원진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방사선학교실 교수는 “왜곡된 X선 사진까지 추가 학습하면 웬만한 인간 의사의 판독 능력을 앞설 수 있다”고 말했다.

○ 아산병원 ‘AI 대회’에 115개 팀 도전

일부 대학병원도 의료용 AI 개발에 뛰어들었다. AI가 제 성능을 내려면 개발 단계에서 질환 한 개당 수만∼수십만 명의 환자 정보를 학습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기록을 확보한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울아산병원은 의료용 AI 연구를 위한 헬스이노베이션빅데이터센터를 출범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빅데이터 분석 대회’를 열었다. 제한된 시간 내에 △흉부 컴퓨터단층(CT) 영상으로 폐암을 정확히 진단하기 △뇌파를 이용해 뇌전증이 발생할 지점을 예측하기 △두뇌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치매 예측하기 △유방 MRI로 암 재발 가능성 판단하기 △갑상선 초음파 영상으로 암의 악성 여부를 검증하기 등 5개 과제에 대해 26일까지 가장 정확한 답을 내놓는 팀이 우승하는 방식이다. 현재 뷰노, 루닛 등 이 분야의 유명 업체뿐 아니라 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의 연구진 등 115개 팀이 참여 중이다.

연세의료원은 병원 내에 흩어져 있는 의료 정보를 모아 AI 개발을 위해 가공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최병욱 신촌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현재 두뇌 MRI 등 영상 기록은 영상의학과에, 세포 현미경 사진은 병리학 교실에, 진료 기록과 의사의 판단은 텍스트 형태로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에 각각 보관돼 있는데,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고 개인정보를 익명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3년 내 의료 AI 시장 5배로 성장”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해 펴낸 ‘의료 AI 현황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AI를 활용한 헬스케어 시장의 국내 규모는 올해 46억7000만 원에서 2020년 256억4000만 원으로 5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부처도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은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우선 현재 민간에서 진행 중인 관련 연구개발을 파악하는 한편 역량을 어느 분야에 투입해야 효율적인지 따져보는 중이다. 의료용 AI 개발을 위한 환자 정보 빅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한 작업엔 내년에야 예산이 배정될 예정이다. 의료기기 허가를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달 14일까지 AI 업체의 의견을 수렴해 다음 달 의료용 AI 개발 가이드라인을 확정 발표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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