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유대인과 독일인 소년의 빼앗긴 우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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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프레드 울만 지음·황보석 옮김/160쪽·1만800원·열린책들

“나는 그의 모든 것에 끌렸다.”

유대인 의사의 아들인 16세 한스 슈바르츠는 새로 전학 온 독일 귀족 소년 콘라딘 폰 호엔펠스를 처음 본 순간 굳게 다짐한다. 그와 친구가 되겠다고.

한스는 잘생기고 매력적인 독일인 귀족 소년과 친해지기 위해 조금씩 다가가고, 둘은 친구가 된다. 하지만 둘의 우정은 1930년대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소설은 소년들의 잔잔한 성장기를 써 내려가는 듯하지만 그 뒤엔 나치즘과 홀로코스트 시대라는 슬픈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소설엔 잔혹한 학살에 대한 증언이나 묘사가 없다. 소년들의 순수한 우정과 나치즘이 판치던 시대가 극명하게 대비될 뿐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아프게 읽힌다. 예술과 철학, 신에 대해 토론하고 시를 암송하며 순수하고 낭만적으로 우정을 쌓던 두 소년은 서로가 독일인이고, 유대인이란 이유로 멀어진다.

작가 프레드 울만은 주인공 한스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190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33년 히틀러를 피해 영국에 정착했다. 그전에 프랑스로 망명했던 그는 그림으로 생계를 꾸리며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동급생’은 그가 70세에 발표한 작품으로 1971년 발표 당시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7년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아서 케스틀러가 ‘작은 걸작’이라 평가한 서문이 실려 재출간되면서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20여 개 언어로 번역됐고, 유럽에서만 한 해 10만 부 이상이 판매된다.

화가로 활동했던 작가답게 소설의 문체가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로 지내던 유대인 아이가 독일 귀족 소년에게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두 소년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어떻게 우정을 만들었는지 생생하게 묘사됐다. 분량은 짧지만 메시지는 동시대를 다룬 걸작들 못잖게 묵직하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동급생#프레드 울만#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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