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엔 바퀴썰매로 아스팔트서 훈련했었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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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평창]평창올림픽 1년 앞으로
‘쿨러닝’ 한국썰매의 상전벽해

‘루지 국가대표 선수 모집.’

1995년 겨울 전국의 각 대학 체육학과 게시판에는 위와 같은 공고가 붙었다. 1998년 일본 나가노 겨울올림픽에 출전할 루지 선수를 뽑기 위해서였다. 전국 각지에서 30여 명이 모였다. 선발 인원은 3명이었다. 그중에는 2등으로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된 강광배(한국체대 교수)도 있었다. 한국에 썰매 종목이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다.

말이 국가대표지 대우는 형편없었다. 얼음에서 타야 할 썰매에 바퀴를 달아서 아스팔트 위에서 타야 했다. 선발전 1위 선수와 3위 선수는 몇 달 안 가 중도 포기했다. 끝까지 버틴 강광배와 두 명의 추가 선발 선수가 나가노 올림픽에 출전했다. 강광배는 “출전 선수 32명 중 31등을 했다. 하지만 마치 구름 속에 떠 있는 듯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은 한국 썰매가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지 정확히 20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여전히 ‘썰매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에서 썰매는 남의 잔치가 아니다.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를 여럿 키워냈기 때문이다.

스켈레톤 윤성빈(23·한국체대)은 6일 현재 2016∼2017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시리즈에서 랭킹 2위를 달리고 있다. 10년째 정상을 지키고 있는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남자 봅슬레이 2인승의 원윤종-서영우 조는 2015∼2016시즌 월드컵 랭킹 1위에 올랐고, 올 시즌에도 4위에 올라 있다. 최근 들어 주춤하긴 하지만 원윤종-서영우 조는 평창에서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힌다.

○ 평창 3수가 한국 썰매엔 전화위복

썰매가 내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의 새 메달밭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썰매의 개척자인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왼쪽)가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지 20년도 되지 않았지만 한국 선수단에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여럿 있다. 스켈레톤의 윤성빈(가운데)과 봅슬레이 남자 2인승의 원윤종(오른쪽 앞)-서영우 조는 평창 올림픽의 유력한 메달 후보다. 평창=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동아일보DB
썰매가 내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의 새 메달밭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썰매의 개척자인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왼쪽)가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지 20년도 되지 않았지만 한국 선수단에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여럿 있다. 스켈레톤의 윤성빈(가운데)과 봅슬레이 남자 2인승의 원윤종(오른쪽 앞)-서영우 조는 평창 올림픽의 유력한 메달 후보다. 평창=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동아일보DB
강광배는 루지 선수 생활을 접고 올림픽 이듬해인 1999년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모자란 학비를 벌기 위해 인근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곳에서 스켈레톤의 세계에 푹 빠졌다. 그는 하루에 50유로를 벌어 그 돈을 고스란히 스켈레톤을 타는 데 썼다. 위에서 한 번 내려오는 데 25유로였으니 두 번 타면 끝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스켈레톤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을 앞두고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또 한 번의 꿈을 위해 그는 개인적으로 올림픽에 출전 신청을 했다. 인근 재봉소로 가 유니폼에 태극기도 직접 박아 넣었다.

그즈음 강원 평창은 첫 번째 올림픽 유치에 도전하고 있었다. 올림픽이 끝난 후 그는 올림픽 유치위원회 전문위원이 됐다. 하지만 세계의 시선은 싸늘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계자들은 “한국에 썰매 선수가 몇 명이나 있나요?”라고 물었다. 평창 유치위원회는 할 말이 없었다. 첫 번째 유치에 실패한 뒤 강원도는 2003년 처음으로 봅슬레이팀을 창단했다.

평창은 2007년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두 번째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이번에도 역시 저변과 경기장 시설이 문제였다. 고심 끝에 3수를 결정한 강원도는 사계절 언제든 훈련할 수 있는 스타팅 연습장을 만들기로 했다. 2010년 5월 마침내 한국 최초의 썰매 연습장이 문을 열었다. 그해 한국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은 사상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연습장에서 국가대표 선발전을 열었다. 그때 뽑힌 선수가 바로 원윤종과 서영우였다.

○ 루지는 왜 힘들까

스타트 연습장이 생긴 후 한국 썰매는 단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이유는 스켈레톤과 봅슬레이의 경우 “스타트가 성적의 90%를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타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썰매 3종목인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루지는 같은 듯 다르다. 가장 쉽게 구별하자면 봅슬레이는 썰매에 앉아서 타고, 스켈레톤은 엎드려서 타며, 루지는 누워서 탄다는 것이다.

세 종목 가운데 가장 타기 어려운 것은 루지다. 루지의 썰매 날은 스케이트 날처럼 얇아 미세한 조종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경기에 사용하는 얼음 두께도 가장 얇다. 올림픽에서 세 종목 가운데 루지 경기가 가장 먼저 열리는 것도 얼음이 얇기 때문이다. 썰매장의 얼음은 두껍게 만들긴 쉬워도 얇게 깎아내긴 어렵다.

2010년 밴쿠버 대회 때 봅슬레이에 출전해 올림픽에서 썰매 3종목을 모두 경험한 강광배 교수는 “루지는 워낙 섬세하고 예민한 종목이라 어릴 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 힘들다. 이에 비해 봅슬레이나 스켈레톤은 나중에 시작해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봅슬레이에 유독 다른 종목에서 전향한 선수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 진정한 꿈은 이제 시작

썰매는 홈 어드밴티지가 가장 큰 종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많이 타볼수록 몸에 익고, 이는 곧바로 성적으로 연결된다. ‘절대 강자’인 두쿠르스가 올림픽 금메달을 한 번도 못 딴 것도 항상 올림픽에서 개최국 선수에게 뒤졌기 때문이다.

알펜시아 리조트 내에 건설 중인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는 그래서 한국 썰매에 첫 금메달을 선물할 수 있는 보물로 평가받는다.

이 경기장은 세계에서 17번째로 건설되는 최첨단 경기장으로 아시아 국가 최초로 실내 아이스 스타트 훈련장을 보유하고 있다. 윤성빈 등 한국 썰매 선수들은 마음만 먹으면 사계절 언제라도 이곳 얼음 위에서 스타트 훈련을 할 수 있다. 2012년 평범한 고교생이던 윤성빈을 발굴한 강광배 교수는 “(윤)성빈이는 스켈레톤을 하기 위해 태어난 선수다. 타고난 기량에 좋은 시설, 든든한 지원까지 받는다. 평창 올림픽뿐 아니라 앞으로 3차례는 더 올림픽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올릴 것”이라고 했다.

평창 올림픽 이후 이 경기장은 국가대표 선수들과 초중고교 선수들을 위한 훈련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또한 지역의 새로운 관광지로 변신해 일반인들도 자연스럽게 썰매를 접할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평창=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평창올림픽#한국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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