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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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윤동주(1917∼1945)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부치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에는 ‘시’가 가득했다. 한 주인공은 시를 필사했고, 다른 주인공은 시를 읊었다. 풍경에서도 대사에서도 ‘시적인 것’들이 날개를 단 듯 날아다녔다. 그중에서도 떠난 연인이 눈으로, 비로 내리는 장면은 빼놓을 수 없다. 첫눈이 올 때 사랑하는 사람은 진짜로, 물론 드라마 속에서만 진짜로, 돌아왔던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회귀나 부활의 장면이 가슴 벅찬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떠난 사람이 눈과 함께 돌아오는 일은 없다.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니까 하얀 눈, 또는 눈에 깃들어 계실 어떤 분이 더 아름답게 상상된다.

 재미있게도, 윤동주의 시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찾아볼 수 있다. 윤동주의 세계에 어느 날 눈이 내렸다. 시인은 그것을 사랑하는 누나와 나누고 싶었다. 편지 봉투에 넣어 보낸다면 어떨까. 봉투에 넣은 눈은 곧 녹아 버릴 것이다. 우표도 주소도 없이 부친다면 어떨까. 역시 어림없는 소리다. 사실, 시인의 편지는 결코 부칠 수 없는 편지였다. 누나는 이미 하늘나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인은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눈을 누나와 함께 보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은 눈을 보면서 그리운 누나를 떠올렸다. 시에는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말만 적혔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눈이 오자, 시인의 마음에는 누님이 눈으로 찾아온 것이다. 누님 생각이 눈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눈은 눈이면서 한편으로는 눈이 아니기도 하다.

 현실은 연약하지만 상상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우리도 시인처럼 상상해 보자. 눈은 내렸고, 또 내릴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와 형제, 혹은 잃어버린 소중한 무엇이 눈과 함께 돌아오시면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편지#윤동주#도깨비#시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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