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하이델베르크의 술통’…독일 정취 가득한 슈만 ‘시인의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30일 1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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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찾은 독일 하이델베르크 언덕 위의 옛 성. 지하실로 내려가니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 술통이 있었습니다. 표지판을 읽어보았습니다. 1751년 제작된 세계 최대 포도주 술통. 폭 9미터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왜 이렇게 커다란 술통이 필요했을까,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술을 마시며 용기를 내고자 한 것일까? 갑자기 머리 속에 한 선율이 떠올랐습니다. 슈만 가곡집 ‘시인의 사랑’ 마지막 곡인 ‘불쾌한 옛 노래’ 일부였습니다.

‘오래 된 불쾌한 노래, 싫은 꿈을/ 이제 묻어버리자. 큰 관(棺)을 가져오라/ 그 관은 하이델베르크의 술통보다 커야 한다.’

이 가곡집은 슈만이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집 ‘서정 간주곡’ 중에서 순서 없이 몇 개의 시를 가져와 곡을 붙인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는 언덕 아래 아늑하게 흐르는 네카 강이 중세의 풍취를 전해주는, 한없이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하이네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어떤 아픈 사랑의 추억을 가졌던 것일까요.

슈만이 이 시를 읽었을 때의 반가움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슈만은 하이네보다 13살 어렸고 두 사람은 같은 해인 1856년 세상을 떠났으니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슈만은 젊어서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이 작은 도시의 구석구석을 훤하게 꿰고 있는 것은 물론 옛 성 지하실의 술통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유럽의 곳곳을 다니다 보면 옛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위대한 자취와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나 의미 깊은 역사현장도 혼자서는 알지 못한 채 지나치는 경우가 많죠. 동아일보는 건축가이면서 문화해설가로 낯익은 정태남 씨와 함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을 2월 12~24일 돌아보는 ‘유럽 예술인문학 거장 50인과 함께하는 그랜드 투어’를 마련했습니다. 저도 함께 가고만 싶은 코스입니다.

서울 한남동에 새로 마련된 음악공간 ‘스트라디움’에서는 4일 테너 김세일과 피아니스트 윤홍천 협연으로 슈만 ‘시인의 사랑’ 전곡 연주회가 열립니다. 이 가곡집에는 봄이나 초여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만, 초겨울에 듣는 것도 색다른 느낌을 전해줄 듯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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