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어림수에 주눅드는 그대… 의심하고 따져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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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정보화시대’ 생존법

벤저민 디즈레일리 전 영국 총리(1804∼1881)는 통계수치를 자주 인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국회에서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각종 통계수치를 조목조목 인용해 대답함으로써 의원들의 예봉을 잘 피해 나갔다. 그리고 대답을 할 때마다 항상 메모지를 보면서 여러 수치를 적절히 활용했다. 디즈레일리 총리가 국회에서 답변을 하던 어느 날,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총리는 그날도 특기를 살려 다양한 숫자를 제시하면서 조리 있는 대답으로 의원들의 공격을 막았다. 그런데 총리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때 실수로 메모지를 떨어뜨렸다. 평소 총리의 해박한 통계지식에 감탄하고 있던 한 호기심 많은 국회의원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도대체 메모지에 얼마나 방대한 수치가 어떻게 정리돼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메모지를 본 의원은 깜짝 놀랐다. 총리가 열심히 들여다보며 참고를 했던 메모지는 사실 숫자 하나 적혀 있지 않은 백지였던 것이다. 디즈레일리 총리는 사실 정확하지 않은 어림수를 ‘대충’ 말하고 있었지만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의원들 그 누구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 숫자의 마력에 휘둘리지 마라

굳이 디즈레일리 총리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대화를 할 때 약간의 수치를 곁들이면 그 내용을 더욱 잘 알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두서없는 주장이라도 그 속에 몇 개의 수치를 인용하면 사람들은 쉽게 수긍한다. 이처럼 숫자는 과학적이라는 이미지와 설득력을 갖기 때문에 노련한 ‘말꾼’들은 필요할 때마다 숫자를 자주 활용한다. 그러나 그런 수치들은 대부분 어떤 근거도 없는 어림수인 경우가 많다. 자기의 주장을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순전히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억지로 꾸며 댄 수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숫자에 주눅이 들어 있는 수문맹 혹은 수맹(數盲)들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전혀 근거가 없는 어림수일지라도 언제나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상대방에게 몇 개의 통계수치를 갖다 대면 상대방은 어리벙벙해져서 반박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숫자로 된 정보의 많은 부분이 어림수, 즉 대강 짐작으로 헤아려서 추측된 값이다. 어림수와 관련된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 전 상원의원(1908∼1957) 얘기다. 그가 미국 사회에 불러일으킨 광풍이 이른바 ‘매카시즘’이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1950년에서 1954년 사이에 일어난, 공산주의 혐의자들에 반대하는 떠들썩한 캠페인으로, 대부분의 경우 공산주의자와 관련이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직업을 잃었던 사건’이라고 돼 있다. 1950년 초, 매카시 상원의원은 경력 위조, 상대방에 대한 명예훼손, 로비스트로부터의 금품수수, 음주 추태 등으로 정치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였다.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카시는 이런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어림수’를 활용하면서 돌파한다. 즉 그는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해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고 폭발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전에도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많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별 반응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인 수치 ‘297’을 제시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신문들은 매카시의 폭로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를 주요 뉴스로 보도했으며 매카시의 폭로를 다룬 신문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엄청난 선동’은 어림수를 통해 생각보다 쉽게 이뤄진다.

○ 숫자를 보는 능력을 키워라

숫자의 힘이 커질수록 여러 수치를 해석하고 수치가 올바르게 사용됐는지 판단하는 개개인의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흔히 현대를 정보화 시대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결국 숫자로 요약되기에, 현대는 ‘숫자정보 사회’, 혹은 ‘숫자화 사회’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꾸 자신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숫자를 이용해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의도에 맞춰서 해석하기 때문에 함부로 숫자를 믿어서는 안 된다. 숫자에 대한 의심은 반드시 다음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야 그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는지 의심하라. 숫자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려면 해당 주제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어야 한다. 우리가 토론하거나 해결하려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숫자가 아니라면 무의미한 것이다.

둘째, 누가, 언제, 어떻게 그 수치를 만들었는지 따져 보고 정확성을 검토해야 한다. 문제와 관련한 숫자라도 정확하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한 법이다. 숫자의 정확성은 누가, 어떻게 그 숫자를 만들어 냈고, 왜 그런 방법을 사용했는지, 혹시 어떤 의도가 개입돼 있지는 않은지 생각함으로써 판단이 가능하다. 이런 의문을 설득력 있게 통과하지 못하는 숫자는 효용가치가 없다.

셋째, 올바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인지 따져 보라. 숫자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확한 숫자라도 잘못 해석하면 엉뚱한 결론을 낳을 수 있다. 특히 다른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숫자를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거듭 강조하지만 일상에서의 대화나 토론 혹은 회사 업무에서의 보고 등에 들어 있는 수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 숫자 속에서는 상대방이 무엇에 대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숫자를 대하는 데 자신 없어 하며, 터무니없는 어림수에도 반박하지 못하고 주눅이 든다. 모바일 기기, 각종 센서, 소셜미디어가 데이터의 폭증을 주도하고 있는 빅데이터 시대에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숫자로부터 올바른 판단을 끄집어내거나 이런 숫자에 기초해 다른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영국의 비평가 H. G. 웰스는 “언젠가는 숫자를 올바로 이해하는 능력이 쓰기나 읽기처럼 유능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언젠가’는 바로 오늘날이라고 해도 틀림없을 것이다. 숫자의 바다, 수치의 홍수 속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지식의 구명조끼’를 단단히 조여 입어야 하는 시대다.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 MBA 주임교수 jhkim6@assist.ac.kr
정리=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이 기사의 전문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89호(11월 15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숫자 정보화시대#어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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