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취업 스펙 쌓느라 수능 후 더 바빠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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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에 어학시험… 고3 ‘스펙 얼리버드족’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이튿날인 13일. 경북 구미에 사는 고3 남모 양은 시내 서점에 들렀다. 고심 끝에 고른 책은 한국어능력자격시험 대비 수험서와 일본어 회화서적. 수능이 끝난 해방감을 만끽해도 모자랄 판에 남 양이 서점에 들러 이런 책을 구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돌입하기 위해서다. 취업난으로 명문대를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다는 인식이 고3 사이에도 퍼지면서 수능 이후 자신이 진학할 대학을 일찌감치 결정해두고 이른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고3이 늘고 있는 것. 일명 ‘스펙 얼리버드(Early Bird)족’이다.

남 양은 “문과에서 그나마 취업이 잘되는 경제학과로 진학할 예정이지만 자격증과 일본어 공부가 나의 경쟁력을 더 키워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어능력시험의 경우 수능 국어 영역과 비슷해 수능처럼 공부하고 있다. 수능이 끝나 학교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 복도에서 공부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내 살길 내가 찾는다”…수능 끝나자 토익학원

고3 스펙 얼리버드족은 수능이 끝난 후도 분주하다. △어학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학원을 다니거나 △자격증 취득에 몰두하거나 △꿈과 관련된 진로심화활동을 하는 등 자기계발에 돌입한다. ‘대학에 진학하면 끝’이라고 여기는 것은 이미 ‘선사시대’의 일이다.

경남 창원에 사는 고3 윤모 양은 수능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토익대비 학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한 뒤 다음날 등록했다. 윤 양은 “중국한어수평고시(HSK) 5급 시험도 준비 중”이라면서 “2학년 때 대학에서 진행하는 해외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의 노력이 결국 목표를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토익학원 부원장은 “토익점수는 유효기간이 2년이므로 대학 3, 4학년 때 다시 시험을 쳐야 한다고 상담을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등록하려는 고3들이 많다”면서 “최근에는 토익뿐 아니라 HSK 시험을 보려는 고3도 많다. 제2외국어 점수에 가산점을 주는 기업들이 많다보니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보다 적극적으로 활동

어학점수 획득, 자격증 취득뿐 아니라 꿈과 관련된 차별화된 진로심화활동을 펼치는 스펙 얼리버드족도 많다. 이들은 여느 대학생보다도 적극적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진로심화활동을 충분히 한 뒤 대학에 입학해야 남들보다 빠르고 구체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

경기 시흥에 사는 강모 군의 꿈은 방송 PD. 강 군은 수능 직후 유명대학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선배와 더불어 전국 각지의 고3 15명을 섭외했다. 대학생 선배와 고3들이 함께 대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고3 토크콘서트’를 열기 위한 것. 서울의 한 스튜디오를 대여하고 인근 공공기관과 학교 등에서 카메라 8대를 빌려 지난 주 촬영을 했다.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행사 영상을 올렸다.

강 군은 “기획, 섭외, 행사진행 모두 혼자 한 것”이라면서 “대학진학 후에도 할 수 있지만 지금부터 경험을 쌓아야 앞으로 시행착오가 줄어든다. 11월 말부터는 대규모 플래시몹 행사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직접 직업 현장에 뛰어들어 꿈을 미리 경험해보는 고3도 있다. 전문 MC가 꿈인 김모 군(서울 성북구)은 최근 자신의 역할모델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나섰다. SNS를 통해 한 유명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접촉한 김 군은 해당 강사가 진행하는 행사에 동행하며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우는 중. 최근에는 한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1박 2일 캠프의 보조진행자로 활약했다.

김 군은 “대학에 진학한 것만으로는 어떤 성공도 보장받을 수 없다”면서 “대학에 가면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사람의 심리를 파악해 행사를 진행하려면 심리학도 공부해야 하고, 글로벌 시대에 대비해 스페인어, 중국어도 공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3들이 스펙 쌓기에 이르게 나서는 현상에 대해 안연근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잠실여고 교사)은 “학생들이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꿈, 목표의식 등이 뚜렷해져 수능 후 더 활발하게 관련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학생부종합전형이 늘어날수록 수능 이후 고3들의 모습은 더욱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재성 kimjs6@donga.com·김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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