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출발점이 다른데, ‘능력주의’를 믿으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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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허구다/스티븐 J 맥나미 등 지음/김현정 옮김/336쪽·1만5500원·사이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고 해로운 영어 단어가 뭔 줄 아나? 바로 ‘굿잡(good job·그 정도면 잘했어)’이야.”(플레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재즈 밴드 지휘자이자 교사인 플레처는 드러머 앤드루 니먼을 끊임없이 다그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위플래쉬’에서 플레처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괴물로 묘사된다. 그는 인정사정없이 무자비하게 제자를 몰아치는 사이코패스인 동시에 아버지마저 주목하지 않은 평범한 청년의 음악적 잠재력을 알아본 실력자이기도 하다. 그다지 잘살지 못하는 편부모 가정 출신인 앤드루가 믿을 ‘백’이라곤 오직 자신의 실력뿐이다. 플레처는 앤드루가 가진 능력에만 집중했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능력주의’ 신봉자였음이 틀림없다.

누구든 노력하면 각자의 능력만큼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능력주의는 항상 선(善)인가. 그리고 현실에서 과연 실현 가능한가. 저자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모두 “아니요”라고 답한다. 철저한 능력주의가 자칫 플레처로 상징되는 적자생존의 살벌한 사회구조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능력주의는 처음에는 나무랄 데 없는 시스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잔인하고 무자비한 제도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고 말한다.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모로부터 상속받는 일체의 유·무형 자산을 금하지 않는다면 지구상에서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는다. 오로지 능력만으로 평가받기 위해선 각자의 출발점이 똑같아야 하는데, 정치학자 애덤 스위프트의 지적처럼 ‘국영 보육원’을 강제하지 않는 한 진정한 기회균등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가 능력주의 사회라는 믿음 역시 완전한 착각이요, 현실 왜곡이라는 게 저자의 우울한 결론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능력주의는 허구다#위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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