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소비 빅뱅… 특명, 코끼리 지갑 열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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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현대자동차, 현지 R&D센터 가보니

인도 하이데라바드 현대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한 인도인 연구원이 진흙을 이용해 차량 모델을 제작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인도 하이데라바드 현대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한 인도인 연구원이 진흙을 이용해 차량 모델을 제작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인도 소비자들은 상상 이상으로 알뜰합니다. 웬만해선 쓰던 물건을 잘 버리지 않아요. 같은 값이면 최대한의 가치를 얻어내려는 게 인도인들의 공통적인 소비문화입니다. 인도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제품이라면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놔도 성공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인도 소비자들의 특성을 묻는 질문에 인도 벵갈루루 삼성전자 연구소(SRI-B)와 하이데라바드 현대자동차 인도기술연구소에서 공통적으로 내놓은 답이다.

두 회사의 인도 연구개발(R&D)센터는 올해로 각각 설립 20주년과 10주년을 맞는다. 두 회사 모두 일본이나 독일 등 다른 나라 경쟁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인도 시장에 진출해 기반을 확고하게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 벵갈루루에 자리 잡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소(SRI-B)에서 인도인 엔지니어들이 제품 개발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인도 벵갈루루에 자리 잡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소(SRI-B)에서 인도인 엔지니어들이 제품 개발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2011년 이후 휴대전화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인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수출업체이다. 인도 내수시장에서는 마루티스즈키에 이어 2위 업체다.

두 연구소의 공통된 역할은 인도 현지 시장을 이해하고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파악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인구 12억 명이 사는 인도에는 카스트 계급 제도가 남아 있을뿐더러 29개 지역별로 22개 언어를 쓴다. 심지어 종교도 힌두교와 이슬람, 기독교, 천주교가 공존하는 나라다. 잠재력이 큰 시장인 동시에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시장인 점을 감안해 삼성전자와 현대차 모두 두 연구소를 해외 연구소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인도 시장을 뚫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두 연구소를 국내 언론으로서는 처음 찾아가봤다.

○ “가장 인도스러운 게 가장 글로벌한 것이다”

6일(현지 시간) 찾아간 벵갈루루 SRI-B.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곳에 자리 잡은 두 동짜리 연구소에는 인도인 엔지니어 40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삼성전자 해외 소프트웨어 연구소 가운데 소비자가전(CE)과 IT모바일(IM), 부품(DS)사업을 모두 지원하는 유일한 연구소이기도 하다.

곽동원 연구소장(상무)은 “SRI-B는 인도 시장을 위한 제품 현지화, 특히 플랫폼에 대한 연구를 한다”며 “인도 전역을 지역별로 나눠 2명씩 시장 조사원을 파견해 시골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유통 매장 주인들과 소비자들을 일일이 접촉해 시장조사를 벌이는 것도 주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를 거쳐 나온 인도 시장용 제품들은 들인 노력만큼이나 긍정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인도 시장 전용으로 내놓은 ‘갤럭시 J2’는 삼성전자 인도 진출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팔리고 있다. 디페시 아므리틀랄 샤 부연구소장(상무)은 “타이젠 플랫폼도 이 연구소에서 출발했다”며 “알뜰한 인도인들을 위해 메모리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가격 대비 성능을 극대화한 플랫폼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SRI-B를 필두로 삼성전자는 올해 초부터 ‘메이크 포 인디아’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인도인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집권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경제개혁 방안인 ‘메이크 인 인디아’를 한 단계 발전시킨 개념이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액티브워시 세탁기와 스마트 컨버터블 냉장고다.

공기오염 문제가 심각한 인도에서는 셔츠를 하루만 입어도 뒷목 부분에 얼룩이 지는 경우가 많아 애벌빨래가 일상화돼 있다. 이를 보다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기획된 제품이 액티브워시다.


▼ “인도 車시장 5년내 세계 3위로 성장” ▼

‘코끼리 지갑’ 열어라

스마트 컨버터블 냉장고는 종교적 이유로 채식을 하는 인도 소비자가 많은 점을 고려해 버튼 하나 눌러 냉동실을 곧바로 냉장실로 전환하는 세계 최초 제품이다. 란지브지트 싱 삼성전자 인도법인 마케팅 책임자는 “당초 인도시장용으로 내놨던 액티브워시가 인도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공하고 있다”며 “깐깐하고 경제적인 인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제품이라면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지속 가능한 R&D 기대

현대자동차가 올해 인도에서 선보인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인 ‘크레타’는 지금 주문해도 4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차가 인도에서 기획해 생산까지 한 첫 성과물인 이 차량은 인도 중부 하이데라바드 인도기술연구소에서 출발했다.

본사 연구소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1996년 100여 명 규모로 설립된 이 연구소는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자동차 시장에 힘입어 현재 현대차 해외 연구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4일(현지 시간) 찾아간 연구소에서는 인도인 엔지니어 700여 명이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가장 핵심인 CAE(해석) 부서에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버스를 뒤틀어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버스에 어느 정도 충격이 가해져야, 어느 부분부터 어떤 방향으로 부서지는지 컴퓨터를 이용해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보안구역’이라고 명시된 바로 옆 부서에서는 디자인 단계를 마친 신차 관련 데이터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모아 공학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비싼 인건비 때문에 늘리기 어려운 컴퓨터공학 관련 인력들을 이곳에서는 무리 없이 운영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인도에서 4년제 공대를 졸업한 인력 첫 해 연봉은 1인당 평균 60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규오 현대차 인도기술연구소장(이사)은 “연구소 문을 열 때부터 지속 가능한 R&D를 위해 지역 인재들을 육성하는 전략을 택했다”며 “그 덕분에 10년 만에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현재 인도 승용차 시장 규모는 신차 등록 기준으로 연간 250만 대(세계 6위). 하지만 2020년이면 최대 500만 대까지 늘어나 세계 3위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연구소에서 기획되는 인도 시장용 차량은 인도 소비자 특성과 현지 도로 사정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인도 시장용 제품은 차체 높이를 다른 나라에 비해 2∼3cm씩 높인 것도 배수시설이 좋지 못하고 과속방지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고 높은 점을 고려한 부분이다.

이 소장은 “저렴하면서도 좋은, 어찌 보면 모순된 인도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 연구소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벵갈루루·하이데라바드=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인도#소비#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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