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위 테러범, 퍼포먼스라 생각했는데 리드싱어 얼굴에 총알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5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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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저녁(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는 더 이상 문화와 예술의 도시가 아니었다. 공포의 현장이었다. 술집과 카페, 록 콘서트장, 축구 경기장에서 ‘불금’의 열기를 만끽하던 파리 시민들은 무자비한 테러범들의 총격과 폭탄 속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전대미문의 6곳 동시다발 테러로 파리가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는데 는 3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마치 도살장 같았다” “도처가 피바다였다”며 당시 처참한 상황을 전했다.

테러범들은 3개 팀으로 나뉘어 거의 같은 시간에 작전을 감행했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없으면 불가능한 연쇄 테러였다.

● 축구 경기장 세 차례 폭발


대참사의 출발점은 파리 동북쪽 외곽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이었다. 경기장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의 친선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도 일찌감치 귀빈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전반전 시작 후 20분쯤 지난 저녁 9시 20분경 경기장 밖에서 첫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프랑스 검찰의 프랑수아 몰랭 검사에 따르면 이 폭발은 테러범이 경기장으로 들어오려다 실패하자 자폭한 것이었다. 테러범은 경기 시작 15분 후쯤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려다 입구에서 이뤄진 몸수색에서 자살폭탄 조끼를 입은 사실이 발각되면서 제지당했다. 범인은 발각된 직후 보안 검색대에서 물러나면서 자살폭탄 조끼를 스스로 폭발시켰다.

첫 번째 폭발 직후 올랑드 대통령은 경호팀으로부터 긴급 보고를 받고 곧바로 안전지대로 몸을 피했다. 첫 번째 폭발을 신호로 3분 후쯤 경기장 밖에서 테러범들은 또 한번 폭탄을 터뜨렸고, 30분 후쯤 경기장 인근 맥도널드 매장에서 세 번째 폭발이 잇따랐다.

경기장 인근에서 발생한 3차례 폭발로 행인 1명이 사망하고 테러범 3명이 자폭했다. 폭발 소리에 관중이 동요하기도 했지만 경기는 계속됐고 프랑스팀이 승리했다. 경기가 끝나고 일부 출입구가 봉쇄되자 일부 관중은 경기장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만약 경기장 안에서 폭발이 있었다면 대량 살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연쇄 폭발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을 피신시키지 않은 프랑스 보안당국의 조치가 적절했는지는 논란 소지가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 술집·식당 연쇄 총격

경기장 첫 번째 폭발과 거의 같은 시간. 경기장에서 남쪽으로 16km 정도 떨어진 자동차로 20분 거리의 파리 도심 10구(區)와 11구에서 연쇄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총격은 10구 알리베르 가의 술집 ‘카리용’ 바에서 시작됐다. 저녁 9시 25분쯤 차에서 내린 두 명의 남성이 식당을 향해 접근했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평범한 복장 차림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AK47 소총을 꺼내들고 난사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길을 건넌 테러범들은 술집 맞은편에 있는 캄보디아 식당 ‘프티 캉보주’에도 총격을 가했다. 두 곳에서 15명이 사망했다.

다음 표적은 10구 남쪽에 있는 11구의 샤론 가에 있는 술집 ‘벨 에퀴프’ 바였다. 저녁 9시 50분쯤 테러범들은 이 식당의 야외 테이블로 접근해 총을 난사했다. 인근 퐁텐 오 루아 가의 피자집 ‘카사 노스트라’의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손님들도 총격을 받아 5명이 사망했고 일본 식당 등도 공격을 받았다.

‘프티 캉보주’에서 식사를 하던 프랑스인 여학생 아가트 모로 씨(24)는 당시 상황에 대해 “175cm 가량의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AK47 소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며 “그들은 얼굴은 북아프리카 타입이었지만, 수염도 기르지 않았고 옷차림도 정숙한 차림이었다”고 말했다.

‘카사 노스트라’에 있던 덴마크 출신 정신과의사 마크 콜클루 씨(43)는 “테러범이 총구를 이쪽 저쪽으로 돌리며 3~4발씩 발사했다. 그들은 전문가처럼 보였다”며 “15~20발의 총소리가 들렸고 이후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고 말했다.

저녁 시간 총소리는 파리 10구와 11구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10구에 사는 조세 비아나 씨는 거리에서 도망가는 생존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숨겨줬다. 그는 “집안에서 몇 시간동안 숨어 있어야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매우 공포스러웠다”고 말했다.

● 극장 인질극 최대 사망자

가장 처참하고 잔혹한 테러는 11구 볼테르 가에 있는 저녁 9시 40분쯤 공연장 바타클랑 극장에서 벌어졌다.

1865년 설립돼 150년의 역사를 가진 바타클랑 극장은 록콘서트, 코미디쇼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11구 최대의 문화공간으로 파리 젊은이들 사이에는 유명한 곳이다. 바타클랑 극장은 지난 1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 공격을 받은 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날 극장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록밴드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EODM)’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극장의 1500석 좌석은 열광하는 관중으로 꽉 차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테러범들은 공연장 뒤쪽으로 매우 조용히 들어왔다. 많아야 25세 정도로 매우 어려 보였고 술집 총격 때와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곧바로 무대로 올라간 테러범들은 총을 허공에 대고 쏘아대며 “너희 대통령 올랑드의 잘못이다. 프랑스는 시리아에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테러범 중 한 명은 아랍어로 “신(알라)은 위대하다, 시리아를 위해”라고 외쳤다.

이 때부터 공포의 2시간이 시작됐다. 테러범들은 극장 관객들을 모아놓고 인질극을 시작했다. 바로 극장 관객들에게 총격을 가하지 않는 것은 다른 테러 장소에서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지 정보를 얻기 위해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테러범들은 계획대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자 인질들을 상대로 무차별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총격이 시작된 것은 테러범이 침입하고 2시간 정도 지난 14일 오전 0시 30분이었다. 테러범들은 10~15분 동안 인질들을 향해 쉴 새 없이 총을 난사했다. 살아남은 인질들은 “테러범들이 인간사냥을 하듯 죽였다”는 증언했다. 인질들은 살아남기 위해 바닥에 누워 죽은 척을 하기도 했다.

극장에 있던 실뱅 라발랑 씨(42)는 “움직일 수 없었고 숨조차 쉬지 않으려고 애썼다”며 “사람들은 되도록 테러범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프랑스인이 아니라서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었다. 다비드 프리츠 괴팅커 씨(23)는 테러범이 자신을 지목해 국적을 물었다고 털어놨다. 그가 칠레인이라고 답하자 테러범들이 총을 쏘지 않고 놓아줬다.

영국 대학생 한나 코벳 씨(21)는 “무장괴한이 무대 위에 나타나자 처음에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밴드의 리드 싱어가 얼굴에 총을 맞았을 때 뭔가 잘못됐다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미국인 헬렌 윌슨 씨는 “테러범들이 장애인 구역까지 들어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총을 난사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경찰은 테러범들의 총기 난사 직후인 오전 0시 45분쯤 극장 안으로 진입했다. 용의자 3명은 입고 있던 폭탄 벨트를 터뜨려 자살했고, 나머지 1명은 경찰에 사살됐다. 이번 파리 테러로 희생된 129명중 가장 많은 99명의 사망자가 극장에서 발생했다.

이번 테러 사태로 부상당한 환자들을 돌봤던 필립 쥐벵 조르주퐁피두병원 응급센터장(51)은 “전쟁보다 참혹했다”고 털어놨다. 200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의사로 근무했던 그는 “환자들이 전쟁터의 부상병들과 같았다”며 “그렇게 많은 부상자를 한 번에 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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