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하늘로 번지는 ‘남중국해 갈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시진핑(왼쪽), 오바마(오른쪽)
시진핑(왼쪽), 오바마(오른쪽)
이번 주말부터 세계 주요국 정상이 모이는 다자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중국 간 남중국해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인 ‘더 힐’은 12일 국방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미군이 지난주 말 B-52 전략폭격기 2대를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인공섬 상공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들 폭격기는 ‘항행의 자유’라는 이름의 작전하에 인공섬 12해리(약 22.2km) 해역 상공을 한 차례 통과했고 “섬에서 벗어나라”며 비행 중단을 요구하는 중국의 무선연락도 무시했다.

중국은 11일 군함 1척을 동중국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해역에 접근시켰다. 이에 앞서 미국은 지난달 27일 구축함을 인공섬 12해리 이내 해역에 진입시키고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이달 5일 핵 항공모함 시어도어루스벨트 함을 타고 직접 남중국해를 순시했다.

남중국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도권 쟁탈전에서 중심 이슈로 떠올랐다. 이 문제는 이번 주부터 열리는 다자 정상회의에서도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4∼16일 터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17∼19일 필리핀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21∼22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줄줄이 참석한다. 미중 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일전을 벼르고 있다.

미국에 밀착하고 있는 일본도 열전에 가세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다자 정상회의 때 중국을 겨냥해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방적인 행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발언할 예정이라고 일본 언론이 13일 보도했다. 미국과 일본은 1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7개월 만에 정상회의를 갖고 남중국해 공조 방안을 논의한다.

남중국해에 인접한 아세안 10개국은 중국과의 친소 관계에 따라 분열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이 미중의 파워 게임과 맞물려 지구적 차원의 이슈가 된 것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배경과 미중 전략을 자세하게 해부한다.


▼ 바다 밑에 석유 367억t, 가스 7조㎥… “양보 못할 요충지” ▼

美-中, 패권 놓고 일촉즉발

남중국해는 중국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7개국에 둘러싸인 주머니 모양의 해역이다. 면적은 350만 km²로 수심이 대부분 200m 이하로 얕고 하이난(海南) 섬을 제외하면 큰 섬도 없다. 대신 작은 섬들과 만조 때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산호초와 암초로 이뤄진 군도가 흩어져 있다. 서쪽으로는 말라카 해협을 통해 인도양으로, 동쪽으로는 대만해협을 통해 동중국해와 서태평양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물류가 오가는 해상 수송로로 전략적 요충지인 셈이다. 한국과 일본의 원유 수입량의 90%, 중국 원유 수입량의 80%가 이 해역을 통과한다. 세계 해운물동량의 4분의 1인 연간 5조 달러(약 5800조 원)어치가 남중국해를 통과한다.

경제적 가치도 엄청나다. 1968년 유엔 아시아 극동경제위원회는 남중국해가 세계 4대 유전으로 석유, 가스, 주석, 망간 등 천연자원이 대량 매장돼 있다고 보고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2010년 남중국해 석유 매장량을 230억 t으로 추산하며 “제2의 페르시아 만”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에서는 현재 석유 367억8000만 t, 천연가스 7조5500억 m³가 묻혀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미중 패권의 향방을 가늠할 지정학적 요충지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의 먼바다 방위 전략과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 전략이 이 해역에서 맞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의 패권 경쟁에 동맹국과 주변국들도 속속 말려들면서 이 해역은 지역 범주를 넘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중국, 남중국해 80% 선 그어 영유권 주장

국제해양법 조약은 해안선에서 200해리까지 그 나라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영유권이 불명확한 섬이 산재하고 7개국이 해안선을 접하고 있는 남중국해에서는 애당초 경계선을 긋기가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9개의 점선으로 남중국해 대부분을 감싸 안는 ‘U’자 모양의 선을 긋고 그 안쪽 해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구단선’이다. 구단선이 감싸 안은 면적은 남중국해 전체의 80%가량이다. 하지만 중국은 구단선의 정확한 위도와 경도는 물론이고 어느 섬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지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구단선 내에서도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은 중국 하이난 섬에서 남쪽으로 1000km가량 떨어진 난사(南沙) 군도다. 주변 6개국이 모두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 해역에는 250개의 암초와 산호초 섬이 산재해 있다. 이 가운데 11개 섬과 5개의 모래톱, 20개의 암초가 물 위에 드러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수면 아래 잠겨 있다.

중국은 난사 군도의 7개 암초를 매립해 최근 1년 반 사이에 총 12km²를 확보했다. 이 가운데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남중국해로 향하는 입구에 위치한 파이어리크로스 암초(중국명 융수·永暑 섬)에는 3000m 길이의 활주로와 항만이 차례로 세워졌다. 군사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중국이 매립한 암초는 만조 때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암초로 국제 해양법상 섬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인공 섬을 근거로 영해를 주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중국은 이와 별도로 난사 군도 북쪽, 하이난 섬 바로 밑의 시사(西沙) 군도에 대한 지배권은 1973년 무력으로 베트남군을 내쫓으면서 확보했다. 필리핀 북부 루손 섬 서쪽 220km에 위치한 스카버러 섬에도 중국 함선을 계속 주둔시키며 인공 섬을 건설하고 있다. 난사 군도와 시사 군도, 스카버러 섬을 연결하면 각 변의 길이가 650∼900km에 이르는 삼각형 모양이 완성돼 유사시 중국 전투기 간 삼각 공조가 가능해진다.

남중국해에서 인공 섬 건설은 베트남과 필리핀도 수십 년 전부터 해온 일이다. 베트남은 21개 섬, 필리핀은 8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대만과 필리핀은 영유권을 주장하는 섬 일부에 군대도 주둔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난사 군도 일대에는 각국이 실효 지배하는 암초가 밀집해 이들 암초 간 거리가 12해리가 안 되는 곳도 있다.

일본도 원죄가 있다. 남중국해를 중국에 편입한 것은 1930년대 이 지역을 점령했던 일본이었다. 중국만 일방적으로 비판한다면 중국 측에서도 “억울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누구에게 있나

영유권을 주장하는 모든 나라가 역사적 자료와 유엔 해양법 등을 근거로 대고 있다. 중국은 후한 시대 사료에 난사 군도에 출항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주장한다. 송 원 명 청 등 역대 왕조 때의 사료에도 난사 군도에 탐사대를 보냈거나 그 지역에서 어업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중국은 특히 1909년 청나라 광둥(廣東) 성과 광시(廣西) 성이 난사 군도를 편입했다고 주장한다. 베트남도 뒤질세라 사료를 근거로 영유권 주장을 계속한다.

근대에 들어 남중국해의 지배권은 계속 바뀌었다. 제국주의 프랑스가 1930년대 초까지 지배권을 행사했으나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이듬해 시사 군도와 난사 군도를 자신들이 식민지화한 대만에 복속시켰다. 이후 일본이 패망하자 중국은 국민당 정부 시절이던 1946년 린쭌(林遵) 2함대사령관을 군함에 태워 난사 군도로 보내 곳곳을 다니며 자국 영토라고 경계석을 박았다.

1947년 국민당 정부 내정성은 남중국해는 대만 소속이라는 지도를 발간하면서 구단선의 원형인 ‘11단선’을 그려 넣었다. 국민당을 본토에서 몰아내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을 세운 중국 공산당은 11단선을 답습해 지도에 올려놓았다. 그러다 1953년 중국이 통킹 만의 섬 영유권을 베트남에 넘겨주면서 9단선으로 변경했다.

그 후 중국은 미국의 힘의 공백이 생길 때마다 남중국해 진출을 가속화했다. 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종결로 종주국이던 프랑스가 철수하자 시사 군도 동부를 점거해 당시 월남과 시사 군도를 나눠 가졌다. 이어 미군이 1973년 월남에서 철수하자 중국은 다음 해 월남군과 교전 끝에 시사 군도 전역을 지배했다.

중국은 1980년대 중반 옛 소련이 베트남 주둔군을 축소하자 이번에는 난사 군도로 발을 뻗쳤다. 냉전이 끝난 후 미군이 필리핀에서 완전 철수한 1992년에는 ‘영해법’을 제정해 남중국해 영유권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 이어 1994년에는 필리핀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난사 군도 미스치프 암초에 건물을 세웠다.

이에 맞서 필리핀은 2013년 1월 유엔해양법 조약에 근거해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에 중재를 신청했다. 중국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1994년 발효된 해양법 조약으로 1947년에 그어진 구단선의 합법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본심은 국제사회의 개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분쟁 당사국인 양국이 자체적으로 해결하자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많은 당사국이 엉켜 있으면 ‘개별 격파’가 어렵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태도다. 미국은 오랫동안 제3자의 태도를 취해 왔다. 2010년 중국이 남중국해를 대만, 티베트와 견줄 만한 ‘핵심적 이익’이라고 밝힌 뒤에야 그해 7월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이 “남중국해에 있어서 국제법 준수는 미국의 국익”이라고 표명했다. 이후로 국제회의장에서 남중국해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남중국해는 공해라고 주장하며 영유권 문제는 ‘해양법에 관한 유엔조약(UNCLOS)’에 따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주요국 중 유일하게 해양법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상업 및 군사 활동에 제약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점을 들어 “미국이 중국을 비난할 때 입지가 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온 양면작전으로 주도권을 확보하는 중국

남중국해 영유권 다툼은 종종 국지적 무력충돌 사태로 번졌다. 2011년 중국 어선이 베트남 석유탐사선의 케이블을 끊어버리자 베트남은 징병령을 발동하고 남중국해에서 실탄훈련을 벌였다. 2012년에는 스카버러 섬 주변에서 필리핀과 중국 군함이 사흘간 대치했고 2014년에는 중국과 베트남 순시선이 일주일 넘게 대치하며 물 대포 교전을 벌였다.

중국은 이 문제로 인한 대외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한편으로 외교적 대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2002년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DOC)’은 이런 배경하에 합의된 것이다. 현재는 행동선언에 법적 구속력을 붙이는 ‘남중국해에 있어서의 행동규범(COC)’을 마련한다며 시간을 끌면서도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과 협의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개입이 본격화하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돈 보따리를 풀며 동남아 국가 달래기 및 분열 작전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16일 아세안 10개국 국방장관을 중국으로 초청해 남중국해에서의 우발적 충돌에 대비한 공동훈련을 제안한 게 대표 사례다. 이 회의 직후 중국은 COC 책정을 미끼로 던져놓고 아세안 국가들과 고위급 협의를 열어 대화 자세를 강조했다. 그 결과 4일 열린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는 미국의 기대와 달리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을 견제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했다.

미국과 험한 설전을 거쳤던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주변국 모두의 ‘공동의 적’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시 주석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다음 주 줄줄이 열리는 국제회의를 앞두고 이달 5∼6일 분쟁 당사국인 베트남을 직접 방문했다. 남중국해 문제가 회의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 방어’다.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을 가진 시 주석은 베트남 인프라 투자에 5년간 최소 8000억 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COC 제정을 서두르자는 기존 합의 사항도 재확인했다.

시 주석은 이어 6∼7일에는 싱가포르를 방문해 “남중국해에서의 통행의 자유는 아무런 문제가 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유화 제스처를 보이는 모양새를 취했다.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필리핀에도 미리 손을 썼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10일 마닐라에 보내 알베르트 델 로사리오 필리핀 외교장관과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에게 남중국해 문제를 정상회의 의제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남중국해#하늘#정상회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