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박주형 ‘스피드 배구의 보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1월 13일 05시 45분


트레이드 카드에 불과했던 현대캐피탈 레프트 박주형(왼쪽)이 신임 최태웅 감독이 구상한 스피드 배구에서 리시브 부담을 덜며 팀에서 없어선 안 될 주요 옵션으로 자리매김했다. 박주형이 지난달 17일 대한항공과의 원정경기 도중 스파이크를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트레이드 카드에 불과했던 현대캐피탈 레프트 박주형(왼쪽)이 신임 최태웅 감독이 구상한 스피드 배구에서 리시브 부담을 덜며 팀에서 없어선 안 될 주요 옵션으로 자리매김했다. 박주형이 지난달 17일 대한항공과의 원정경기 도중 스파이크를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빠른 공격능력에도 5시즌 동안 존재감 없어
최태웅 신임감독 믿음에 자신감·실력 회복
현대캐피탈 스피드배구 적임자로 종횡무진


현대캐피탈 레프트 박주형(28)에게는 사연이 많다. 그는 2010∼2011시즌 신인드래프트를 거쳐 V리그 선수가 됐다. 처음 선택해준 팀은 신생팀 우리캐피탈이었다. 1라운드 전체 2순위. 앞 순번이 한국전력(당시 KEPCO)에서 지명한 박준범이었다. 3순위는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정성민, 4순위는 대한항공 곽승석. 뒷날 이 선택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선수의 기량을 떠나 팀의 필요성으로 봤을 때 우리캐피탈이 곽승석을 먼저 지명해야 옳았지만, 수상쩍은 거래 때문에 미리 포기해줘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들 했다. 누구도 확인해줄 순, 없지만 역대 신인드래프트의 여러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다.

● 뛸 자리가 없어 1년 만에 다른 팀으로 이적

우리캐피탈에는 레프트 자원이 많았다. 신생팀 특별대우로 2008∼2009시즌 드래프트 때 2∼5순위, 2009∼2010시즌 드래프트 때 1∼4순위 등 모두 8명을 뽑았다. 박주형보다 1년 앞에는 강영준이 있었다. 다음 해에는 최홍석이 입단했다. 루키 시즌 20경기에서 37세트만 뛰고 82득점을 기록했던 박주형이 차지할 자리가 없었다. 한 시즌을 마치고 현대캐피탈로 이적했다.

당초 현대캐피탈은 최홍석을 탐냈다. 황동일을 LIG손해보험에 넘겨줬던 우리캐피탈은 세터가 필요했다. 첫 시즌 외국인 세터 빌라드를 선택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고, 토종 세터를 찾던 때였다. 현대캐피탈과 의견조율이 됐다. 현대캐피탈은 최홍석을 얻기 위해 송병일과 이철규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 2-1 트레이드는 불발됐다. 이철규가 안 가겠다고 버텼다. 선수생활을 그만둬버렸다. 이미 송병일을 보내준 현대캐피탈도, 우리캐피탈도 황당해졌다. 결국 송병일은 보내주고, 최홍석 대신 박주형을 데려오는 1-1 트레이드로 바뀌었다. ‘꿩 대신 닭’인 격이었다. 현대캐피탈 입장에서 보자면 딱 그런 트레이드였다.

● 보물 두고 계속 밖으로 눈을 돌렸던 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은 최홍석에 계속 미련을 뒀다. 그럴수록 박주형의 기대가치는 낮아졌다. 그렇게 4년을 보냈다. 지난 시즌 처음 100세트 넘게 출전했고, 세 자릿수 득점도 했다. 조금씩 성장했다. 수비형 레프트여서 서브리시브를 잘해야 하는데,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팀은 여전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4라운드 마지막 날 박주형은 또 짐을 쌌다. 이번에는 한국전력행이었다. 서재덕과 권영민, 박주형이 포함된 2-1 임대 트레이드였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며칠 뒤 없던 일이 됐다. 박주형은 다시 천안으로 돌아왔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팀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저 그렇게 팀에 있어도, 없어도 크게 티가 나지 않은 선수로 지낼 뻔했던 그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최태웅 신임 감독이 박주형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최 감독은 “열심히 운동하는 선수에게는 누구라도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박주형은 누구보다 빠른 공격능력을 갖고 있었다. 새 감독은 그 장점을 봤다.

●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기회

2015∼2016시즌을 앞둔 훈련 때부터 기회가 많아졌다. 최태웅 감독은 세터와 리베로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에게 리시브 이후 공격을 준비하라고 했다. 최 감독이 구상한 ‘스피드 배구’는 리시브의 비중을 줄이며 더욱 유기적이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라는 것이다. 예전 60∼70% 정확성을 자랑했던 리시브는 이제 50% 이하로 떨어졌다.

최 감독은 서브 리시버를 늘려 각자의 수비범위를 줄이고 세터의 머리 위로 정확히 보내기보다는 어택라인 근처로 높게 공을 띄워놓은 뒤 세터가 4개의 공격옵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박주형은 이 배구의 적임자였다. 최 감독은 리시브에서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리시브 부담이 사라졌다. 곁에서 여오현 플레잉코치가 자신감을 심어줬다.

기회의 문이 열렸다고 믿는 선수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능력이 나왔다. 비록 아직은 훈련 때만큼의 공격가담과 성공률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이제 팀에서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4일 삼성화재전에선 1세트 막판 결정적 디그로 팀에 승리를 안겼다. 12시즌 만에 처음 나온 2연속경기 삼성화재전 3-0 완승의 계기였다. 10일 우리카드전에서 팀은 2-3으로 패했지만, 박주형의 존재감은 더 빛났다. 2세트 송준호를 대신해 투입된 뒤부터 팀의 플레이가 달라졌다. 박주형의 능력이 여기저기에서 빛났다. 최근 5경기 가운데 가장 많은 11득점을 했다. 그는 지금 신나게 배구를 한다. 감독은 코트에서 마음껏 놀라고 했다. 그동안 박주형과 현대캐피탈에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 자신감과 믿음이었다.

한편 12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벌어진 ‘2015∼2016 NH농협 V리그’ 남자부 2라운드 경기에선 선두 OK저축은행이 최하위 KB손해보험을 세트스코어 3-0(25-21 25-16 25-21)으로 제압하고 5연승으로 시즌 8승째(1패)를 따냈다. KB손해보험(1승7패)은 6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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