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보 중시한 獨사민당 슈미트 같은 정치인 왜 야당엔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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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별세한 독일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사회민주당(SPD) 정치인이지만 이념에 매몰되지 않았던 위대한 실천가(Macher)였다. 그는 빌리 브란트 총리의 보좌관이 동독 간첩으로 드러나 브란트가 사임하면서 1974년 총리 자리에 올랐다. ‘68혁명’ 여파로 당시 독일은 기존 사회질서를 비판하는 세력이 판치고 있었고, 공산국가 동독은 이런 혼란을 부추겼다. 슈미트는 책임윤리를 강조하며 해이해진 사회 기강을 바로잡고 좌파가 소홀히 했던 안보와 경제를 탄탄히 다지는 데 힘써 독일 통일과 번영의 길을 열었다.

동서독 교류로 독일 통일의 초석을 쌓았다는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도 그가 후임 총리가 되지 않았다면 좌초했을지 모른다. 슈미트는 미국과의 기존 우호관계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대(對)동구관계를 증진했고,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도 안보에 관해선 양보하지 않았다. 소련이 동유럽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자 국내외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의 서독 배치를 허용한 사람도 슈미트였다. 이 과정에서 당내의 환경주의자와 평화주의자가 ‘반핵’의 기치를 내걸고 탈당해 녹색당을 만들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슈미트 집권기 서독은 적군파 바더-마인호프 그룹의 극좌파 테러로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슈미트가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보여준 타협 없는 조치는 서독의 보수적인 국민에게도 사민당에 대한 신뢰를 심어줬다. 브란트가 1969년 사민당 총리로 처음 집권했을 때만 해도 국민은 좌파의 수권 능력을 반신반의한 게 사실이었다. 더 이상 급진세력의 숙주 역할을 하지 않고 국가 안보에 불안을 주지 않는 실용적 중도좌파 독일 사민당의 이미지는 슈미트가 만들어냈다.

슈미트는 제1차 오일쇼크로 침체기에 접어든 경제를 브란트로부터 넘겨받았다. 하지만 독일 경제의 살길은 수출이라는 인식하에 보호주의를 타파하고 환율 안정에 주력해 실업률과 물가를 낮출 수 있었다. 프랑스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과 협력해 유럽통화체제(EMS)를 만들었고 이는 1992년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가 탄생하는 초석이 됐다.

독일 사민당의 연이은 브란트와 슈미트 정권은 우리나라의 김대중(DJ)·노무현 정권에 종종 비교된다. DJ의 햇볕정책은 동방정책과 비교해도 결함이 적지 않지만 DJ가 후임으로 슈미트 같은 실용주의자를 만나지 못한 것도 실패 원인이다.

DJ와 노무현을 배출한 오늘날의 야당은 10년을 집권하고도 여전히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주지 못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바로 지난 총선까지만 해도 통합진보당과 선거연대를 통해 종북 세력의 숙주 역할을 했다. 투철하지 못한 안보관에서 나오는 외교안보 정책, 성장에 대한 비전 없이 복지 부담만 키운 경제정책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자칭 ‘진보’라는 우리 야당에는 왜 슈미트 같은 정치인이 없는가.
#헬무트 슈미트#독일 사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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