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잡은 ‘같으면서 다른’ 풍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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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이광호 2인전

이광호의 유채화 ‘무제 3071’. 가까이 다가서서 살핀 실물의 얼개가 먼발치에서 본 인상을 크게 배신하는 그림이다. 스페이스비엠 제공
이광호의 유채화 ‘무제 3071’. 가까이 다가서서 살핀 실물의 얼개가 먼발치에서 본 인상을 크게 배신하는 그림이다. 스페이스비엠 제공
30일까지 유근택(50) 이광호 작가(48)의 2인전 ‘같으면서 다른’을 여는 서울 용산구 스페이스비엠을 대중교통으로 찾아간다면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올라와 10분쯤 걷는 샛길을 택하길 권한다. 가을이 잠시나마 머물러 깊이 무르익었다 지나감을 확인시켜 주는 낙엽 수북한 풍경이 그 길목에 있다. 올 봄과 여름의 나무를 담은 두 작가의 그림은 그 길 끝에서 만날 때 한층 두툼해진다.

이광호 작가의 작품을 신문기사에 덧붙여진 작은 이미지로만 접하면 풍경사진으로 생각하기 쉽다. 너비 120∼180cm의 이 캔버스 유채화는 먼발치에서는 비쩍 말라붙은 나무 덤불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보인다. 앞에 바짝 다가서서 살피면 의외의 추상(抽象)이 돋는다. 가는 붓으로 나무와 풀을 그린 다음 그 위에 물감 튜브를 그대로 대고 짜내며 끼적인 흔적만 가득하다. 그렇게 바른 물감 선이 굳기 전에 날카로운 도구로 하얗게 스크래치를 낸 것. 오래 붙들고 꼼꼼하게 그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거의 모든 그림이 3일 안에 완성됐다. 이미지는 올 초 제주에서 수집했다.

유근택의 한지 수묵채색화 ‘The Window 2’.스페이스비엠 제공
유근택의 한지 수묵채색화 ‘The Window 2’.
스페이스비엠 제공
유근택 작가는 3∼5월 독일 베를린에서 생활하며 시내 도서관 한 자리에 매일 앉아 바라본 창밖 풍경을 그린 연작 일부를 내놓았다. 매일 한 장소를 지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한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1995년) 속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캔버스에 남은 건 매일 같은 나무 위를 스쳐 간 ‘다른 빛과 바람’의 흔적이다. 작업실에 감춰뒀다는 수십 점의 연작 모두를 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곧 마련되길 기대한다.

전시된 14점 속에는 하나같이 나무가 가득하다. 날마다 정신없이 달랐던, 올 한 해 매일매일의 공기와 시간이 가지에 맺힌 나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유근택#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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