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오의 우리 신화이야기]생불할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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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을 묘사한 무신도.
용왕을 묘사한 무신도.
생불할망은 인간에게 자식을 잉태하게 해주고 출산을 도와주며 낳은 아기가 무사히 자라도록 돌봐준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식 점지부터 산육(産育·낳아 기름)에 이르기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해주는 여신인 셈이다. 제주도의 ‘생불할망본풀이’는 바로 이 여신의 유래를 설명하는 구전신화다. 생불할망이 일곱 살 되던 해, 옥황상제가 생불할망을 불러 말했다. “인간 세상에 내려가 아기를 낳게 해주는 일을 하라.”

생불할망은 옥황상제의 명령을 받아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때마침 사람이 죽는다며 슬퍼하는 곳이 있었다. 출산 중이던 어떤 여인이 아기를 낳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생불할망은 은가위로 탯줄을 자르고 참실 석 자로 탯줄을 잡아매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어서 따뜻한 물로 아기 목욕시키기, 유모 불러 아기 젖 먹이기, 미역국 끓여 산모 먹이기, 사흘 후 쑥물로 산모 목욕시키기, 태(胎) 태우기, 아기에게 배내옷 입히기, 칠일 후 광주리에 아기 눕히기 등 모든 출산 과정을 착오 없이 해냈다.

그런데 백일이 지나고 아기가 뒤집기를 하게 되었을 때였다. “내가 점지한 아이인데, 어떤 여자가 와서 해산을 했느냐?” 구(舊)삼승할망이 갑자기 와서는 호통 치며 생불할망을 때렸다. 좋은 일하고 뺨 맞은 격이었다. 억울한 생불할망은 곧바로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께 하소연했다. 옥황상제는 차사를 내려보내 구삼승할망을 잡아오게 해 물었다. “너는 어떤 여자인데 생불할망을 때렸느냐?” 구삼승할망은 자신은 본래 동해용왕의 딸인데, 한 살 때 어머니 젖가슴을 때린 죄, 두 살 때 아버지 수염을 뽑은 죄, 세 살 때 생낟알을 흩뜨린 죄 등 모두 아홉 가지 죄를 지었다고 했다. 그래서 용왕이 “네 죄를 용서하지 못하겠다” 하시며 무쇠철갑 속에 집어넣어 바다에 띄워버렸다는 것. 그 후 바닷속에서 삼 년, 바다 위에서 삼 년을 지내며 떠돌다가 남해용궁에 이르렀는데 “죄를 용서받으려면 인간 세상에 나가 산신(産神) 노릇을 하라”며 내보내시기에 지금까지 그 말대로 하고 있다는 것 등을 소상하게 아뢰었다.

“너도 보통 사람은 아니다!” 옥황상제는 일단 구삼승할망을 인정한 뒤 은대야에 두 그루 꽃나무를 심어놓고 생불할망과 구삼승할망에게 말했다. “이 꽃나무 중 번성하는 쪽이 산신 노릇을 하라.” 구삼승할망의 꽃나무는 처음엔 꽃이 성했으나 이내 시들었고, 생불할망의 꽃나무는 처음엔 꽃이 연약했으나 나중엔 사만오천육백 가지가 자라나 그 가지마다 꽃이 번성했다. 옥황상제가 가차 없이 판결을 내렸다. “구삼승할망은 저승에서 죽은 아이들을 맡고, 생불할망은 인간 세상에서 산신 노릇을 하라.” 구삼승할망이 옥황상제에게 애원했다. “생불할망의 심부름이라도 하겠습니다.” ‘원조 산신’ 격의 구삼승할망한테는 굴욕적 간청이었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듣지 않고 구삼승할망을 저승으로 보내버렸다.

이후 ‘신임 산신’으로 임명된 생불할망은 서천꽃밭을 설치하고 그곳에다 오색 꽃을 심었다. 동쪽의 푸른 꽃은 남자아이를, 서쪽의 흰 꽃은 여자아이를 점지하고, 남쪽의 붉은 꽃은 장수하도록, 북쪽의 검은 꽃은 단명하도록, 중앙의 누런 꽃은 출세하도록 하는 꽃이었다. 생불할망은 이 오색 꽃이 번성하는 대로 인간에게 아기를 점지하고 다녔다. 신화의 결말이다. 오색 꽃의 조합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니! 혹여 계급이나 자본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보단 나아 보이는가? 그러나 그건 ‘누런 꽃’의 신화적 변형일 뿐이다.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생불할망#구삼승할망#옥황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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