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화를 가라앉히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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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한훤당(寒暄堂) 김 선생이 서울에 있을 때 일이다. 한번은 꿩 한 마리를 얻었으므로 이를 말려서 어머니 계신 곳에 보내려 했는데 그만 고양이 새끼가 훔쳐가 버렸다. 선생은 크게 노하여 지키던 사람을 꾸짖었다. 이때 정암(靜菴)이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어버이를 받드는 정성이 비록 간절하다고는 하더라도 군자의 말씨는 너무 과격해서는 안 됩니다(奉親之誠雖切 君子辭氣不可太過).”》

한훤당은 조선 전기의 학자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호입니다. ‘소학’에 심취해 ‘소학동자(小學童子)’로 불렸다고도 하죠. 사화에 휩쓸려 유배를 당했는데, 유배지에서 조광조(趙光祖·1482∼1519)에게 학문을 전수하여 조선 유학의 맥을 이었다고 합니다. 정암은 바로 조광조의 호입니다.

귀한 꿩고기를 얻고는 부모님께 보내드릴 생각에 기뻐하고 있는데 그만 고양이가 잽싸게 물고 달아납니다. 손도 못쓰고 당하였으니 기쁨이 분노로 바뀌고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지키던 자에게 “네 이노옴!” 냅다 소리를 지르고 한바탕 야단을 치는데, 이때 조용히 다가온 제자. “선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 어? 응?” 이거 좀 당황스럽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내 마음을 잘 알면서… 감히 스승에게… 내가 화를 좀 냈기로….’ 온갖 상념이 머리를 스칩니다. 그러다 한순간,

선생은 다가와 손을 잡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금방 후회하였는데 너의 말이 또 이와 같으니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 땀이 흐르는구나. 너는 곧 나의 스승이다(吾方悔之 汝言又如此 吾不覺愧汗 汝乃吾師也).”

그 스승에 그 제자입니다. 당돌하게 느껴질 법한 제자의 지적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감사해하는 모습. 역시 큰 학자가 되실 분들이라 주고받는 것도 남다릅니다. 이때 정암의 나이는 17세였다는군요.

화를 내면 그 화는 점점 커지고, 그러다 보면 끝내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날 분노 조절을 못해서 생기는 사건 사고들이 다 그렇습니다. 화가 일어나는 초기에 얼른 한 걸음 물러서서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화를 가라앉히면 분노의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정암 선생 같은 분이 옆에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누가 옆에서 말리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더 화를 내니….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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