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규 할머니 “65년전 앳된 신랑 한눈에 알아봤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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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7개월 만에 헤어진 북녘의 남편 만난 이순규 할머니

65년 만에 헤어진 남편을 만났던 이순규 씨가 23일 오후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애틋했던 상봉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살포시 미소 
짓고 있다. 이 씨가 소중하게 들고 있는 것이 바로 1949년 결혼식 때 남편이 신었던 구두다. 청주=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65년 만에 헤어진 남편을 만났던 이순규 씨가 23일 오후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애틋했던 상봉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살포시 미소 짓고 있다. 이 씨가 소중하게 들고 있는 것이 바로 1949년 결혼식 때 남편이 신었던 구두다. 청주=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65년 만의 만남이 꿈처럼 느껴진 걸까. 23일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만난 이순규 씨(84·여)의 표정과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 씨는 20일부터 사흘간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때 남편 오인세 씨(83)를 만났다. 1949년 12월 결혼해 이듬해 7월 헤어지고 처음 본 남편이었다. 감회를 묻자 이 씨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담담한 반응이었지만 이 씨의 시선은 집안 곳곳에 더해진 남편의 흔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거실 나무탁자 위를 덮은 청색 테이블보와 백두산 들쭉술 등의 상표가 붙은 북한 술 3병…. 모두 남편이 건넨 선물이다.

탁자를 한참 바라보던 이 씨는 살포시 미소 지으며 “앞으로 남편 제사를 지낼 일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37년 전 8월 3일(음력) 이 씨의 꿈속에 남편이 나타났다. 이후 그는 매년 이날이 되면 남편의 제사상을 차렸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을 다시 본 순간 이 씨는 신혼 때의 앳된 남편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황해북도 송림시에 살고 있다는 남편은 중국에서 공부한 뒤 공장 관리자로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북에서 재가해 슬하에 아들 둘, 딸 셋 5남매를 뒀다는 말도 들었다.

홀로 평생을 산 것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씨는 “당시에는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 당치도 않다”고 말했다. 이 씨는 친척집에 양자로 간 시아주버니를 대신해 시부모 제사도 혼자 모셨다. 그는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아들에게 자주 회초리를 들었던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남편이 남긴 물건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남편의 사진을 비롯해 결혼할 때 입었던 저고리와 두루마기, 남편이 손수 깎은 ‘초(楚)’가 새겨진 장기알 1개는 깊숙한 장롱 속에서 이 씨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결혼식 때 새로 산 구두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끈이 거의 삭을 정도로 낡아 있었다.

이번 만남 때 이 씨가 건넨 선물은 65년 전 두 사람의 약속이었다. 이 씨가 시집올 당시 집에는 벽시계가 없었다. 남편은 “올가을 추수한 돈으로 시계를 사주겠다”고 이 씨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반백 년이 지나 남편 대신 이 씨가, 벽시계 대신 두 사람의 이름을 새긴 손목시계를 남편에게 선물한 것이다. 또 남편이 두고 간 구두를 보고 새 구두 한 켤레를 사갔다. 추운 북쪽 날씨를 감안해 두꺼운 잠바도 두 벌이나 챙겼다.

내내 담담하던 이 씨는 “하고 싶은 말이 태산처럼 많았는데 못했다”며 결국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아들 오장균 씨(65)도 “언론 및 북측 관계자 등의 관심이 쏠리면서 아버지가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며 “마지막 날에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헤어지게 돼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했지만 이 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통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조마조마해져서 통일 대신 평화라는 표현을 쓴다”며 “하루빨리 평화가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이 씨는 직접 문 밖까지 나와 기자를 배웅했다. 마치 남편이 언제 돌아올까 평생 기다린 것처럼 기자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24일부터 26일까지는 2차 상봉이 진행된다. 이번에는 남측의 이산가족이 신청해 찾은 북측 가족들을 만난다. 23일 강원 속초시 한화리조트에 모인 상봉단 90가족 255명 중 최고령자인 구상연 씨(98)는 딸에게 줄 빨간 꽃신을 두 손에 꼭 쥐었다. 1950년 헤어질 때 사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는 또 당시 네 살이던 둘째 딸이 “아빠 (갔다가) 또 와”라고 외치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청주=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속초=공동취재단
#이순규#이산가족상봉#북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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