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딱 한잔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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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주제는 ‘직장 에티켓’]<188>새벽 별 보는 회식 그만

“딱 한 잔만 더 하고 가자.”

카드회사에 다니는 김모 씨(30)는 회식에 참석할 때마다 직장 상사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자리를 옮기자”는 말은 필수 코스처럼 따라다닌다. 직원들은 술집에서 시작해 감자탕집, 노래방은 물론이고 해장국집까지 전전하며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고 집에 돌아갈 때가 많다. 매번 정말 ‘한 잔’만 마시고 집에 돌아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는 곳마다 소주와 맥주를 여러 병 시킨 뒤 술잔을 돌리곤 한다.

적당히 마신 뒤 집에 가려고 시도해본 적은 있다. 올 초에 결혼해 신혼인 김 씨는 “잠시 아내에게 전화 한 통만 하겠다”고 말한 뒤 술집 밖으로 슬쩍 빠져나간 적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통화가 길어질라치면 직장 상사는 “○○는 어디 갔느냐”며 그를 찾았다. 결국 김 씨는 “먼저 집에 들어가 봐도 될까요?”라고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상사는 “그렇게 하라”고 말하기는커녕 “집에 무슨 일 있느냐”고 되물었다.

한국에서 ‘밤샘 회식’은 아직도 많은 기업에 깊게 뿌리내린 문화다. 일부 직장에선 이를 개선하기 위해 ‘119 캠페인(한 가지 종류의 술로 1차에서 오후 9시 전에 끝내자)’ ‘112 캠페인(한 가지 종류의 술로 1차에서 2시간 이내에 끝내자)’ 등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직장에서 ‘짧고 굵은 회식’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마다 주량도, 체력도, 바이오리듬도 다르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데다 밤을 새우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에겐 ‘밤샘 회식’이 무척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직장생활 3년 차인 최모 씨(27·여)도 술에 약한 데다 밤을 새우면 다음 날 눈을 뜨기가 무척 힘들어 회식 자리가 길어질 때마다 전전긍긍할 때가 많다. 그는 회식 때 “2차에 가자”는 팀장에게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말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아직 간도 생생한 나이에 벌써 그러면 앞으로 사회생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사실 최 씨가 듣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2차는 부담 갖지 말고 원하는 사람만 가자.”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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