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미군 뒤엔… ‘MIU’에 禮 갖춘 오바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시진핑과 국빈만찬 4시간 앞두고도… 뎀프시 합참의장 전역식 참석 “국가헌신에 경의”

25일(현지 시간) 오후 3시경.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과 기자회견을 마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점심을 먹고 전용차량에 올랐다. 이날 오후 7시 백악관에서 열릴 국빈만찬을 불과 4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그가 향한 곳은 백악관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진 버지니아 주 알링턴의 포트마이어 기지. 미군 내 최고위직인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의 전역식과 조지프 던퍼드 신임 의장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전역식 시작을 알리는 장내 방송이 나오자 뎀프시 의장의 장남인 크리스 뎀프시 육군 대위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목이 멘 채 37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는 아버지의 전역명령서를 읽었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이 연단에 섰다. 옆엔 뎀프시 의장과 부인 디니 여사를 비롯해 아들딸과 9명의 손자 손녀까지 있었다. 뎀프시 여사는 갓 돌이 지난 손자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뎀프시 의장을 애칭 ‘마티’로 부르며 감성적이면서도 진중한 목소리로 그가 군에 입문한 과정부터 소개했다.

“1970년, 당시 뉴욕에 살던 고교생 마티(뎀프시 의장의 애칭) 집에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로부터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하지만 마티는 웨스트포인트에 갈지 마음을 못 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어머니 세라 여사는 그런 마티에게 ‘한번 도전해보렴’이라고 말했다. 최고의 미군이 탄생할 수 있게 도와준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

엄숙했던 행사장에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말을 이었다. “마티가 조국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 고교 시절 애인이자 지금의 부인인 디니는 격려와 배려로 군인 배우자의 표상이 됐다. 크리스, 메이건 등 아들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됐다. 미국인들을 대표해 뎀프시 가족이 보여준 국가에 대한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뎀프시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말에 웃다가도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합참의장으로서 그의 업적과 열정을 회고했다.

그는 “내가 마티를 2011년 9월 합참의장에 임명한 것은 그가 보여준 군의 비전, 신뢰 때문이었다”고 말한 뒤 “마티, 당신은 나에게 언제나 에두르지 않고 정직하게 조언했다. 당신 덕에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마치고,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을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떠나는 합참의장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까지 공개하며 ‘멘 인 유니폼(제복 입은 사람들)’의 가치를 새삼 일깨웠다.

“마티는 의장 취임 후 국방부에 있는 집무실 책상에 빈 시가 상자를 하나 두었다. 그 안엔 마티가 (2003년) 기갑부대 사단장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했을 당시 그 휘하에서 전사한 132명의 미군 이름과 사진, 미처 이루지 못한 그들의 삶이 하나하나 적힌 카드가 있다. 그 상자 겉면에는 ‘(전사자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말자(make it matter)’라는 문구가 있다. 마티는 각종 회의 때도 132장의 카드 중 3장을 꺼내 항상 품에 지니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신을 내 임기 중 상당 시간 곁에 둘 수 있어 감사했고, 이제 전역하는 마티 당신을 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어 자랑스럽다”며 “당신이 보여준 헌신에 국가는 최고의 감사를 표한다”고 맺었다.

가족 앞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은 뎀프시 의장은 “백악관 회의 때 종종 군인으로서 할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를 허용해 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그는 IS 격퇴전을 치르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반대에도 지상군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개진해왔다.

뎀프시 의장은 “조국의 제복(cloth of our nation)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생애 최고의 영광이었다”고 말한 뒤 “부디 조국을 위해 먼저 간 전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다시 한번 군에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답사를 마치고 오바마 대통령,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등과 악수한 뒤 울먹이며 환호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행사장엔 그의 전역을 아쉬워하는 군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날 전역식에 참석했던 군 관계자는 기자에게 “미군이 여전히 세계 최강인 것은 첨단 무기뿐만 아니라 이렇게 ‘제복 입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헌신과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