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부실기업 99곳 짊어진 産銀, 채권액 10조에 허리 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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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금융기관 건전성 악화 우려

2013년 말 동부그룹의 경영 사정이 악화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전권을 맡아 구조조정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동부그룹의 빠른 회생을 점치는 목소리가 많았다. 동부제철 인천공장 등 알짜 자산이 많아 일부 자산만 매각해도 동부의 자금 사정이 금방 풀릴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에 매각하려는 ‘패키지 딜’을 시도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포스코가 산은과의 협상 끝에 인수를 거절하면서 자산 매각 ‘골든타임’이 지나버렸고 동부의 자금난은 순식간에 악화됐다. 현재 주요 계열사들이 이미 매각됐거나 매각을 앞두고 있지만 동부의 자금난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금융권은 “동부 구조조정 과정은 기업 회생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며 산은의 동부 구조조정 결과에 낙제점을 주고 있다.

경기 악화로 위기에 빠지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산은이 감당해야 하는 부실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부실기업 뒷바라지에 등골이 휠 지경인 산은이 ‘맏형격’ 정책금융기관에 걸맞은 기업 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15일 정우택 의원(새누리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기업들에 대한 은행권의 전체 채권액은 4조8856억 원이며 이 중 18.9%에 달하는 9255억 원을 산은이 쥐고 있다. 민간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기업 구조조정에서 발을 빼고 있는 가운데 국책은행인 산은이 부실기업에 대한 추가 지원 부담을 떠안은 결과다.

워크아웃뿐만 아니라 회생절차(법정관리), 자율협약 중인 기업까지 더하면 산은이 짊어진 채권액은 더 커진다. 산은이 관리 중인 구조조정 기업은 8월 20일 현재 금호산업 등 워크아웃 중인 기업 43개, 경남기업 등 법정관리에 돌입한 기업 43개, 자율협약 중인 기업 13개로 총 99개에 이른다. 이들 기업에 대한 산은의 채권액은 총 10조541억 원에 달한다. 금융권 총채권액 29조355억 원 중 34.6%가 산은에 쏠려있는 셈이다.

문제는 채권 규모 등 덩치만 커졌을 뿐 산은이 기업 관리 능력이나 구조조정에 있어서 충분한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도 금호산업 매각 과정에서 매각 금액을 둘러싼 채권단 내부의 이견을 매끄럽게 조정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산은 의사 결정의 속도감과 결단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자회사로 관리 중인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수조 원의 부실까지 드러났다.

기업 구조조정 부담이 지나치게 산은에 쏠림에 따라 산은의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산은의 부실채권은 6월 말 현재 3조 원으로 부실채권 비중이 2.44%에 이른다. 국내 시중은행의 평균 부실채권 비중(1.5%)보다 높다. 정 의원은 “기업 구조조정이 실패할 경우 산은의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구조조정 시스템의 변화를 고민해야 할 때이며 산은의 금융안정성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현재의 상황은 문제가 있다는 판단으로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 등을 통한 구조조정 시스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윤창현 전 금융연구원장은 “산은이 부실기업의 처리 등 구조조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산은에 너무 큰 부담이 쏠려 있다”며 “구조조정 전문회사 등 민간 시장에 산은의 역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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