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형준]생산적인 국정감사로 가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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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와 조사 구별 못하고 與野 편 나눠 정쟁에만 몰두
부실국감, 갑질국감, 호통국감…
27년 넘도록 오명 못씻고 국론분열-사회갈등만 부채질
의원들 자율성 책임감 높이고 상시 국감체제 구축하자

김형준 객원논설위원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김형준 객원논설위원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제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국정감사 제도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보편화해 있지 않은, 한국 국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행정부 견제 수단이다. 의회의 행정부 감시는 민주주의가 작동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개념을 뒷받침해주는 매우 중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회의 권위는 행정부에 대한 견제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 국정감사가 부활한 지 27년이 지났지만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벼락치기 국감’ ‘정쟁 국감’ ‘망신주기식 호통 국감’ ‘국회의원 갑질 국감’ ‘부실 국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 꽃이라고 하는 국정감사가 왜 이렇게 망가지고 퇴보했을까.

첫째,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매년 정기적으로 국정 전반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반면 국정조사는 ‘국회가 그 입법 등에 관한 권한을 유효적절하게 행사하기 위하여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그런데 감사할 사안을 조사하고 조사할 사안을 감사하면 기대하는 성과를 낼 수가 없다. 가령, 롯데그룹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기업의 잘못되고 황당한 지배구조는 국정조사를 해야 할 사안이다. 국감의 직접적인 대상이 아닌 민간 기업과 민간인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해 호통치고 망신을 준다고 재벌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

둘째, 3주간의 짧은 기간에 700곳 이상의 엄청난 피감기관을 감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수박 겉핥기’식 국감이 될 수밖에 없다. 의원들의 정신을 재무장하고, 국감 상황실을 설치하고, 국감 우수 의원을 매주 선정한다고 해도 망가진 국정감사 제도가 정상화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셋째, 여당 의원은 정부를 무조건 옹호하고 야당은 정부를 무조건 비판하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4년 7월에 미국 연방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공화·민주 양당이 만장일치로 ‘이라크 보고서’를 채택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잘못되고 과장된 정보를 근거로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하튼 이 보고서는 현직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악영향을 끼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정보위원회의 위원장인 팻 로버츠 의원은 부시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 소속이었고, 해당 위원회는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4개월 앞둔 미묘한 시점에 재선을 꿈꾸는 현직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보고서가 채택된 것은 그야말로 미국 의회가 살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정말 꿈같은 얘기다.

왜 미국 의회에서는 되고 한국 국회에서는 안 되는가. 미국 의회에서는 여당이라고 무조건 대통령과 정부를 옹호하지 않는 불문율(informal rule)이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국민과 국익을 위해 의정 활동을 해야 한다고 학습 받고,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도 큰 이유다.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의 예산 낭비와 국정 운영의 난맥상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것은 국회 본연의 기능이다. 건강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여야가 편을 나눠 폭로하고 정쟁에 매몰해 국감이 본연의 목적에 따라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할 때 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국론 분열과 사회적 갈등이 일상화하면서 공동체가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게 만든다.

이제 생산적인 국정감사를 위해 한국 국회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갈 필요가 있다. 의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극대화해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하면서 정책 국감, 민생 국감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상시 국감 체제를 구축하고, 사후 검증 제도를 강화하며, 어느 의원이 국감에서 어떤 시정 요구를 했는지를 밝히는 ‘개선 요구 실명제’도 채택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사안을 잘 구분해 여야가 불필요한 대립과 파행으로 치닫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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