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해도 후회, 안 하면 더 후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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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지 헬스케어 홍보회사 엔자임헬스 차장
손수지 헬스케어 홍보회사 엔자임헬스 차장
최근 유명 연예인 커플이 강원도의 한 민박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밀밭을 배경으로 펼쳐진 결혼 풍경은 사진으로 봐도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들꽃으로 장식하고 가마솥에 국수를 삶아 먹는 결혼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름다웠다.

나도 꿈꾸던 결혼이 있다. 탁 트인 야외에서 단정한 흰 원피스를 입고 올리는 소박한 결혼식. 너무 많은 사람을 초대하지 않고 평소 좋아하는 친지만 모여서 진심 어린 축하를 받고 새 출발을 약속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작은 결혼식, 그런데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7년을 사귄 남자 친구와 지난 주말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을 결심한 후에도 준비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었다. 사귀는 동안에도 다툰 일이 손에 꼽을 정도니 결혼 준비도 무난히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기대했다.

준비 과정에서 몇 번이나 결혼이 파투 날 뻔했다는 친구들의 경험담도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지금까지 잘 만나 왔는데 그깟 준비가 뭐라고 지지고 볶고 하겠나 싶었다. 그것이 오해라는 것을 아는 데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상견례 장소와 예식을 치를 도시를 정하는 문제는 뜻밖에 순조롭게 정리되었다.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지방에 살고 있지만, 남자 친구는 서울 사람이고 나 역시 고향을 떠난 지가 오래니 서울에서 진행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첫 고비는 잘 넘었지만, 식장을 정할 때부터 다툼이 시작되었다. 적절한 위치에 있으면 식사가 별 볼 일 없어 보이고, 가격이 맞으면 시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러 군데를 둘러본 후 결정의 시간이 왔다. 그런데 남자 친구와 내가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식장이 서로 달랐다.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자는 남자 친구와, 돈이 들더라도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다는 내 의견이 격렬히 부딪쳤다. 결국 눈물바람까지 한 끝에 내가 원하는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지만,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스튜디오 촬영은 내가 반대했었다. 나는 몇 번 보지도 않을 웨딩 사진을 찍는 데 돈과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고 생각했지만 남자 친구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사진을 찍어보겠느냐며 꼭 촬영하자고 졸라댔다. 결국 촬영 건은 내가 한발 양보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결혼은 내가 모르던 내 성격까지 발견하게 해주었다. 평소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주저함이 없었는데 결혼에 관한 모든 결정에는 고민과 망설임이 따라붙었다. 모두 예쁘지만, 비슷비슷한 디자인인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것은 까다로운 퀴즈를 푸는 것만큼 어려웠다. 여행사 없이 신혼여행을 예약하는 데 며칠이나 걸렸다. 한복 청첩장 부케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그렇다고 준비 과정 자체가 전부 별로였던 것은 아니다. 우선 이제는 남편이 된 남자 친구와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며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평소 느긋한 성격의 남자 친구는 급하고 불같은 내게 맞춰 준비를 서둘러주었다. 가끔 속이 터질 때도 있었지만, 나도 그가 준비해 나가는 과정을 참고 기다려주는 인내를 배우게 되었다. 어쨌든 나와는 다른 그 여유로움을 사랑해 결혼까지 결심하게 된 것이니까, 이제는 그 다름을 인정하는 방법도 서서히 익혀 보리라 다짐했다.

양가 부모님의 사랑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양가의 가풍과 부모님의 의견에 맞춰 결혼 준비를 하느라 절절매는 모습을 많이 봐서, 나도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양가 부모님은 결혼 진행 과정에서 큰 이견 없이 우리의 뜻을 따라 주시고,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다. 친구와 직장 동료의 따뜻한 축하와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남들과 달랐으면 했지만 결국 내 결혼식 역시 비슷해져 버렸다. 아주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소박하지도 않은 정말 보통의 결혼식을 치렀다. 속상한 마음과 홀가분한 마음이 반반이다. 다행인 것은 힘든 결혼 과정이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위기를 거치며 서로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었다. 살다가 미워지는 순간이 오면 지금 이 마음을 꺼내 보고 싶을 만큼 말이다.

손수지 헬스케어 홍보회사 엔자임헬스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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