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경숙 이어 박민규 표절… 한국문단 단단히 고장 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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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민규 씨가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낮잠’에 일부 표절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회자되고 있는 몇몇 게시물에서 일부를 따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썼다고 말했다. 또 ‘낮잠’과 설정이 비슷한 일본 만화 ‘황혼유성군(黃昏流星群)’에 대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며 “비슷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 씨의 대중적 명성은 작가 신경숙 씨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은 문단에서 한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기에 신 씨의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이은 그의 표절 인정은 문단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신 씨의 ‘전설’이 발표된 것은 1996년, 박 씨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낮잠’이 발표된 것은 각각 2003년과 2007년이다. 세 작품 모두 한두 달, 한두 해도 아니고 길게는 약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표절로 밝혀졌다. 표절을 가리는 것은 비평의 기본이다. 그런 능력도 갖추지 못한 채 상을 주고 작품을 파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겉핥기식 비평이나 남발한 것이 우리 문단의 실상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박 씨는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처음에는 부인하다 한 달 만에 시인했다. 그러나 신 씨는 여전히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멈춰 있고, 신 씨의 ‘전설’을 낸 창비의 백낙청 편집인은 “의도적인 베껴 쓰기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신 씨의 표절 부분은 백번 양보해 본인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쓸 당시에 ‘의도적인 베껴 쓰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표현이다.

오늘날 작가는 문학작품 외에도 만화나 인터넷 게시물 등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표절의 유혹을 받는다는 사실이 박 씨를 통해 드러났다. 비평가의 일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고 이제는 혼자서 다 할 수도 없다. 신 씨의 ‘전설’은 발표된 직후 표절 의혹이 제기됐으나 문단의 권력을 쥔 비평가들이 무시했다. 비평가들이 독단과 타성에서 벗어나야만 우리 문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신경숙#박민규#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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