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디지털 시대와 따뜻한 금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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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병 신한은행장
조용병 신한은행장
소비자의 숨은 니즈와 불편이 혁신을 이끌어 낸다. 애플은 언제, 어디서, 어떤 기기를 사용하더라도 원하는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파악해 아이튠스라는 음원 플랫폼을 구축했다. 또 통화, 촬영, 검색 등을 하나의 기기에서 수행하려는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아이폰을 개발해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다른 온라인 쇼핑몰들이 상품 판매에만 신경 쓸 때 아마존은 고객 편의에 집중했다. 클릭 한 번이면 주문과 결제가 완료되는 ‘원클릭 시스템’, 아무 조건 없이 환불해주는 ‘묻지 마 반품 서비스’ 등으로 고객의 신뢰를 얻었다. 20년간 20만 배 매출 증대라는 경이적인 성장은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금융업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아프리카의 케냐에서는 휴대전화로 전화번호와 금액을 누르기만 하면 결제 및 송금이 완료된다. 사파리콤이라는 통신사가 2007년 개발한 송금 시스템 ‘엠페사(M-Pesa)’ 덕분이다. 금융 인프라가 열악해 고객이 겪고 있는 불편함을 재빨리 파악한 통신사가 금융업까지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사파리콤은 최근 구글, 페이스북을 제치고 경제전문지 포천 선정 ‘세계를 바꾸는 혁신기업’ 1위에 올랐다.

미국의 앨리뱅크(Ally Bank)는 인터넷전문은행이면서 고객 78만 명, 자산 1015억 달러(약 120조 원)의 대형은행이다. 시중은행의 예금금리는 연 0.1% 안팎에 불과하지만 앨리뱅크는 10배 가까운 고금리를 제공한다. 10∼15달러에 이르는 계좌 유지 수수료도 없다. 쉽고 빠르게 24시간 365일 거래할 수 있다. 기존 은행의 높은 수수료와 낮은 예금금리, 시공간의 제약에 실망한 고객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하다.

한국은 케냐처럼 은행에 가기 위해 몇 시간씩 차를 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나 유럽처럼 금융서비스 관련 수수료가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금융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편함은 분명히 존재한다. 최근 인터넷전문은행이나 디지털 금융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 것도 기존 은행이 제공하는 것보다 다양하고 혁신적인 상품,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창립 이후 지금까지 ‘고객 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왔다. 고객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 초반 ‘기립 응대’와 찾아가는 서비스 등으로 혁신을 주도하며 급속히 성장했다. 은행 중심의 서비스, 권위적인 태도가 관행처럼 여겨지던 상황에서 고객이 은행에 원하는 바를 잘 파악해 해결해 나간 것이다.

고객의 니즈가 변하고 있다. 더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작은 불편과 불만도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이제 친절과 빠른 서비스, 가격 경쟁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장과 고객을 세분화해 정밀하게 살펴보고 언제 어디서나 창조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스마트 사회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이 고객의 숨은 니즈를 찾아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금융은 단순히 최신 디지털 디바이스를 도입하는 수준의 외형 변화가 아니다. 고객을 중심에 두고 채널, 영업방식 등 모든 면을 디지털 구조에 맞추는 근본적인 내부 변화를 의미한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 제고는 기술을 도입하고 활용하면서 생기는 부수적인 효과일 뿐 궁극적인 지향점이 될 순 없다. 금융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새로운 고객 니즈에 부응하는 일이야말로 ‘따뜻한 금융’의 요체다.

조용병 신한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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