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 청하니, 손 대신 팔로’… 열차로 뛰어드는 칼레항 난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6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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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기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으로 유럽 난민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마침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5일 헝가리에 있던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시리아 난민 1만5000여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올 1월 이후 아프리카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지중해를 건너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은 20여 만 명에 달한다.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그리스 코스 섬과 함께 유럽행 난민위기의 3대 핵심지역으로 꼽히는 프랑스 북부 칼레 항 난민촌을 현장 취재했다.

5일 오후 프랑스 북부의 칼레 항.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는 페리호 출발시간을 앞두고 도로에는 항구로 들어가려는 대형트럭과 승용차가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곤봉을 손에 진 경찰들이 50미터 간격으로 도로를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다. 도로 주변 숲 속에 숨어서 트럭 위에 올라타려는 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숲 속에서 7~8명의 난민들이 몰려 나와 경찰에게 손짓하며 험악한 말을 주고받던 사이, 갑자기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도로를 달라기 시작했다. 무전기를 들고 있던 경찰이 달려 나가 곤봉으로 위협하며 트럭에 접근하는 난민들을 쫓아냈다. 한 경찰관은 “유로터널 단지 안에서 매일 24시간 동안 화물차 뒤 칸에서 1000명의 난민들을 떼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칼레 항은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 유로터널을 지난 열차는 해저터널을 35분 만에 통과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사하라 사막을 넘고, 지중해를 건너 수천 km를 이미 목숨을 걸고 건너온 난민들에게 최종 결승점을 앞두고 불과 33.7km의 바다는 별다른 장애물이 될 수 없는 듯했다.

시리아의 세살짜리 난민소년 쿠르디의 죽음으로 국제사회가 외면해온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5일 헝가리에 있던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인데 이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이날 시리아 난민 1만5000여 명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칼레 난민촌도 희망으로 부풀기 시작했다. 쿠르디의 죽음 이후 칼레의 난민촌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들이 옷, 신발, 가구, 텐트, 화장지 등 생필품을 갖고 찾아오는 자원봉사자의 손길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영국은 ‘취약자 재배치’(VPR) 프로그램을 통해 시리아 국경 부근 유엔난민캠프에서 직접 시리아 난민들을 데려오겠다고 했을 뿐 독일처럼 이미 유럽에 건너온 난민들에게 문호를 열 계획은 없다. 영국과 프랑스 당국은 기대에 부푼 난민들이 유로터널 입구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해올 것에 대비해 오히려 항구주변의 철제 담장을 더 높이 쌓고, 경비인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점점 요새화되는 칼레의 경찰과 이를 뚫으려는 난민들의 ‘쫓고 쫓기는’ 싸움도 한층 격렬해지고 있었다.

● 인도주의 위기 속 난민들의 희망가

칼레항으로 향하는 도로 옆 숲 속에 들어선 난민촌에 들어선 순간 “과연 이곳이 유럽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색 비닐로 둘러싼 판자촌 오두막, 구멍 난 수도 파이프에서 새어나오는 물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 거리엔 플라스틱 병들이 나뒹굴고, 쓰레기와 오물이 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난민들은 3000~4000명이 살고 있는 이 캠프를 ‘정글’이라고 부른다. 키 작은 관목과 덤불 숲으로 이뤄진 숲이지만 어지러운 텐트와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정글 같은 분위기가 나타났다. 그러나 난민촌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 보니 간이 공중화장실, 수도에 이어 음료수를 파는 상점과 식당, 카페, 학교, 모스크, 교회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난민촌에서 만난 난민들 중에는 악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취재를 위해 악수를 청하면 손을 피하고 대신 팔뚝이나 어깨를 내미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열차나 트럭 위에 올라타다가 손이 부러지거나 심하게 다쳤지만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처지다.

칼레에는 약 150여 명의 시리아 난민들은 소년 쿠르디의 죽음에 대해 분노와 슬픔, 기대감이 섞인 반응을 보였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탈출해 온 카웨이 씨(21)는 “나도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려고 밀수꾼에게 1200달러를 주고 고무보트를 탔는데 배가 높은 파도에 오르락내리락 할 때 터져 나오던 여성과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며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였다는데, 영국도 칼레에 있는 3000명의 난민들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다마스쿠스 대학 2학년에 재학 도중 군대에 징집되는 것을 피해 시리아를 탈출했다. 그는 “내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남을 죽여야만 한다는 현실이 너무 두려웠다”고 말했다. 시리아 공무원에게 뇌물을 바치고 여권을 구했던 그는 레바논, 터키,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를 거쳐서 칼레까지 오는 데 총 1만 유로 가까이 들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청년 사피 씨(25) 3년간 미군 통역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탈레반이 마을에 들어와 미군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끌고 갔다. 그의 아버지는 총살을 당한 이후로 그는 고향을 떠났다. 그는 탈레반을 위해 일하든, 정부군을 위해 일하든 지배자가 바뀌면서 서로 죽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버밍험에 내 사촌형이 있는데, 옷 공장에서 한시간에 7파운드를 번다고 들었다”며 “나도 제2외국어가 영어인 만큼 꼭 영국에 정착해 새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난민촌에는 새로운 경제활동도 이뤄지고 있었다.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에서 자동차 정비 일을 했던 난민인 아흐메드 씨(42)는 최근 난민촌에서 버려진 자전거 부품들을 주워 모아서 중고자전거를 수리해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영국행을 시도하는 난민들이 밤마다 12km 떨어진 유로터널 입구까지 가려고 자전거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만일 자전거를 타고 간 난민이 영국행에 성공하면 자전거를 버리고 간다. 이 자전거를 다시 주워와서 되파는 것은 무척 좋은 사업”이라고 자랑했다.

칼레에 몰려든 난민들은 영국에는 영어가 통하고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기대 때문에 영국행에 목숨을 걸고 있다. 또 영국은 난민 신청자에게 1인당 1주일에 약 42파운드(약 7만6000원)의 지원금을 주는 것도 난민들에겐 매력적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게바르 씨(23)은 “올해 초 영국에 가는데 성공했었는데 내게 비자도, 일자리도, 지원금도 주지 않았고 이탈리아로 추방만 당했다”고 말했다.

● 해가 저물면 2000번 씩 열차로 뛰어드는 난민들

정글에는 오후 5시에는 매일 한차례씩 프랑스의 구호단체들이 제공하는 급식을 받기 위해 긴 줄이 생긴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난민들은 정글을 떠나 영국행 밀입국을 시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유로터널을 지나는 화물열차에 올라타기 위해 철조망을 넘어야 하는 지점은 난민촌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이다. 이들은 대부분 운동화를 신고, 경찰의 눈에 띄지 않게 짙은 색깔의 재킷을 입는다.

유로터널 입구는 난민촌에서 걸어서 약 2시간이 걸리는 A16 고속도로 근처의 로터리이다. 삼엄한 경찰의 감시를 뚫고 도로 가드레일을 뛰어넘고, 가슴 높이의 덤불 숲 사이를 15분간 뛰어간 뒤, 5~6m 높이의 철조망을 넘어야 유로터널에 선로 도착한다. 이곳에서 난민들은 영국행 열차로 이송되는 화물트럭의 밑바닥에 숨어든다. 난민들은 새벽까지 1인당 3,4번씩 기차위로 점프한다. 유로터널을 통과하는 열차에 난민들이 불법으로 올라타려는 시도는 매일 밤 평균 2000번 이상이다.

또 다른 난민들은 도버해협을 오가는 페리(차량을 싣고 가는 배)에 실리는 트럭 위에 올라타기를 시도한다. 트럭을 통한 밀입국은 대부분 국제 밀수꾼들에게 1인당 1200유로 가량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냉장 트럭은 경찰의 X레이 검사에도 내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비싼 돈을 주어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시리아 출신 난민 카웨이 씨는 “내겐 돈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1200유로를 낼 여유가 있다”며 “내가 가진 유일한 선택은 성공할 때까지 울타리를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 해변에서 쿠르디의 죽음처럼 칼레항에서도 매일 밤 비극적인 사건이 이어진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난민 10명이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0월에는 두 명의 시리아인인 마우아즈 알발키와 샤디 카타프가 잠수복을 입은 채 칼레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조사결과 이들은 칼레에 있는 스포츠용품 판매점에서 잠수복을 구입한 뒤 이들은 헤엄쳐서 도버해협을 건너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에리트레아에서 온 마이사 씨(30·여)는 “내 친구는 유로터널 인근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었다”며 “당시 그녀는 경찰이 분사한 최루액을 눈에 맞고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며 경찰이 친구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칼레의 ‘정글’은 서유럽 최대의 난민캠프 중의 하나이면서도 시설은 최악의 수준이다. 난민촌에서는 폭력과 화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위생상태도 심각하다. 의료 자원봉사자인 앙드레 보쉬 씨(27)는 “칼레의 난민촌은 글로벌 기준으로 볼 때 난민캠프라고 볼 수 없는 최악의 수준”이라며 “아프리카 수단이나 시리아 국경 인근의 난민캠프가 여기보다 훨씬 인간적”이라고 말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1일 내년 초까지 칼레에 1500명의 이민자를 수용할 수 있는 공식 난민캠프를 세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반(反)이민을 내건 프랑스의 극우정당 FN 측은 칼레에 난민촌이 세워진다면 국제적인 난민을 결집시키는 실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가톨릭 구호’ 단체의 자원봉사자인 뱅상 드 코닉은 “독일은 단 이틀 만에 2000명의 난민을 위한 숙소를 조직해내고 있는데, 프랑스는 1500명 규모의 난민캠프 짓는데 왜 4개월 씩이나 걸리는가?”하고 반문했다.

● 점점 높아지는 담장,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지난 1일 영국과 프랑스의 해협을 오가는 유로스타 열차가 칼레 역 부근의 터널에서 밤새 발이 묶였다. 150명의 난민들이 한꺼번에 선로에 뛰어들어 열차를 정지시켰기 때문이다. 이날 6대의 기차가 출발역으로 돌아가거나 선로에 멈춰 섰다. 승객들은 어둠 속에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에어컨도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밤새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날 이후 프랑스 국영철도(SNCF) 측은 유로터널 칼레역 선로 주변 37헥타르 지역에 자라고 있는 무성한 관목 숲을 잘라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선로로 뛰어드는 난민들을 경찰이 좀더 쉽게 적발해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유로터널 측은 칼레역 근처 7.5마일의 선로 주변에 높은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현재의 낮은 장벽은 어린이조차도 쉽게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로터널 측은 올해 1월 이후로 약 3만7000여건의 불법으로 도버해협을 건너려는 난민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보안조치 강화에도 난민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아무리 높은 철제 울타리라고 하더라도 밤마다 수백 명의 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커터로 절단해 구멍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현재 칼레항에는 500명의 경찰관이 배치돼 있다. 경찰관 클로드 베리 씨(46)는 “며칠 전 밤에 수백 명의 난민이 모든 방향에서 동시에 몰려들었는데 그들을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의 법규에는 열차 선로에 뛰어들어 열차운행을 방해하는 경우에는 최대 6개월간 구류를 살거나, 375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프랑스 경찰은 하룻밤에 수백 명씩 유로터널에 침입하는 난민들을 붙잡더라도 차에 태워 수십km 밖으로 데려가 벌판에 풀어주는 대처 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만8000명이 이렇게 체포됐지만 칼레의 ‘정글’로 다시 걸어서 돌아왔다. 영국의 경찰당국은 칼레의 난민 10명 중 7명이 유로터널을 4개월 안에 통과해 영국으로 건너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편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기차역에서 노숙하던 난민 6000명가량이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에 도착했으며 밤새 1800명이 더 도착할 예정이다. 헝가리의 수용소를 탈출한 난민 1200명이 걸어서라도 서유럽에 가겠다며 한꺼번에 도로로 쏟아져 나오자 혼잡을 우려한 헝가리 정부가 버스편 100대를 제공한 것이다. 독일 뮌헨역에 내린 난민들은 역에 마중 나온 시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일부 난민들은 “고맙습니다. 독일” “사랑해요. 독일”이라는 메시지를 적은 판지를 들고 벅찬 기쁨에 눈물을 터뜨렸다.

이날 헝가리 정부가 제공한 버스에 타지 못한 1000명 가량의 난민은 걸어서 175㎞ 떨어진 오스트리아 국경까지 가겠다며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세르비아와 맞닿은 헝가리 남쪽 국경에도 4일 하루에만 2000명 이상의 난민이 헝가리 진입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유럽 난민 사태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시리아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시리아는 지난 30년간 가장 많은 난민을 발생시켰던 아프가니스탄을 제치고 세계 최대 난민 발생국에 올랐다.

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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