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세입자 설움 모르는 서울시…고척돔 이전 협상 ‘슈퍼 갑’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9월 4일 05시 45분


서울 구로구 고척돔 앞. 스포츠동아DB
서울 구로구 고척돔 앞. 스포츠동아DB
한국 최초의 돔구장’ 고척돔(사진)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넥센과 서울시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펼치고 있지만 ‘이전 협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고척돔은 당초 아마추어전용구장으로 삽을 떴다. 그러나 수차례 용도가 변경되면서 3000억원 가까운 혈세가 투입됐다. 서울시는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두려워 어물쩍 프로구단 유치에 뛰어들었다. 목동구장에서 퇴거 명령을 받은 넥센이 우선협상자다. 서울시가 지난해 9월 대한야구협회와 2016년부터 목동구장을 아마야구전용구장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하면서 세입자는 8년간 정들었던 집을 잃었다. 발표 전날 저녁, 전화 한통의 통보가 전부였다.

고척돔의 눈부신 외관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반짝반짝 윤이 나고, 빛도 난다. 누구나 탐낼 만하다. 그러나 빛에 빠져 빚만 지고 쫄딱 망할 수 있다. 추산되는 운영비는 연간 80억∼100억원 안팎이다.

넥센은 목동구장에서 경기장 임대료와 사무실, 광고비 등으로 매년 40억원 가까운 세금을 낸다. 연간 40억∼70억원 안팎의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타 구단에 모범이 되고 있다. 프로스포츠 종목 전체를 통틀어 흑자를 기록하는 구단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히어로즈는 가장 흑자 전환에 가깝게 다가선 구단으로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팀들이 모기업에 의지해 운영되고 있지만, 이 또한 변하고 있는 추세다. 제일기획 아래 모여든 삼성스포츠단이 일례다.

반면 서울시는 ‘달콤한 꿈’에 빠져들었다. 개장 효과를 톡톡히 기대하고 있다. 관중 증대는 당장이라도 뻔한 일로 판단한다. 고척돔 인근에 위치한 전철 구일역 서쪽 출구를 열어주기만 하면 될 것처럼 말한다.

입주 초반 새 명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반짝 인기몰이는 가능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넥센은 서울시 서남권의 경제력과 환경을 파악하지 못해 섣불리 관중 예상을 못하고 있다.

자가용을 이용해 경기를 보러 가면 악명 높은 상습정체구간이 기다린다. 492대의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지만, 순수 야구팬이 사용할 수 있는 주차면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이마저도 사전예약을 걸어야 한다. 많은 야구팬들은 경인로와 서부간선도로, 안양천의 매캐한 매연 냄새를 맡으며 걸어야 한다.

서울시는 “2년간 운영해보고 다시 얘기를 나누자”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 조례안을 통해 주어진 한시적 2년 광고권과 운영업체 계약우선권은 정치논리에 의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넥센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생존이 우선인 구단으로선 위험 부담을 줄어야 한다. 서울시는 ‘세입자 논리’가 부담스럽다고 항변하지만, 정작 책임을 나누려는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서울시를 ‘슈퍼갑’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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