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메르스 실패’ 정확한 진단 없이 졸속처방한 국가방역체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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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후속 대책으로 질병관리본부(질본)의 본부장을 실장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신종 감염병 발생 시 ‘방역대책본부’ 역할을 하도록 하는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을 확정했다. 정규직 역학조사관을 현재 2명에서 64명으로 늘리고 24시간 감염병 긴급상황실을 설치하며 2020년까지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음압격리병상을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지난달 공청회에서 발표된 것과 거의 같은 내용이 14일 만에 정부 정책으로 나온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취약한 보건의료체계와 허술한 재난관리시스템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러나 질본 책임자가 차관급 아닌 1급이어서 메르스 초기 대처에 실패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질본을 독립시키지 않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무슨 일만 터지면 정부 조직을 확대하거나 책임자 직급을 올리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복지부 공무원들이 승진 잔치를 벌인다면 메르스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일이다.

메르스 대응 과정의 문제를 밝혀내는 감사원 감사나 사태의 전말을 드러낸 백서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을 확정짓는 것은 졸속 처방의 우려가 있다. ‘부처 이기주의’에 빠진 복지부 관료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만든 내용을 임명장 받은 지 하루밖에 안 된 의사 출신 정진엽 장관이 서둘러 발표했다는 의심이 든다. 신종 감염병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선 구멍 뚫린 방역체계에 대한 철저한 복기를 바탕으로 조직 내부의 뼈를 깎는 반성과 책임을 묻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허술한 대응과 직무유기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은 없고 메르스 핑계로 공무원 수만 늘려서는 메르스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정부는 7월 28일 메르스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으나 양성 환자 1명이 있어 세계보건기구 권고 기준에 따른 공식 종료 시점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메르스 사태의 정확한 진단 없는 국가 방역체계 쇄신은 무의미하다. 후속 대책이 달랑 차관 자리만 하나 늘리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메르스 실패#졸속처방#국가방역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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