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때론 손해보는 거래가 더 큰 이익 가져다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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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2차대전때 이오지마 점령… 희생 컸지만 終戰 교두보 확보
피인수기업 전략적 가치 크면 ‘웃돈’ 얹어주고 사는 용기 필요

손자병법의 ‘지형(地形)’편에 나오는 ‘통형(通形)’이란 먼저 점령하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땅을 뜻한다. 통형을 확보하려면 어느 정도 이상의 대가가 필요하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 특히 피인수 기업의 가치를 산정할 때 해당 기업의 미래 현금창출 능력에 기초한 ‘적정가치’보다 더 가격을 쳐주면 인수기업의 주가가 떨어지는 사례가 많다. 일시적인 주가 하락 수준을 넘어 ‘승자의 저주’에 내몰려 고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사실을 최고경영자들이라고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인수합병(M&A)을 할 때마다 과도하게 높은 비용을 치르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피인수 기업이 회사의 고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교두보적 가치가 있다면 가격을 더 쳐줄 용의가 있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사이판, 괌, 티니언 섬으로 이뤄진 마리아나 제도와 이오지마(硫黃島)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큰 피해를 봤다. 전사자만 무려 1만여 명이었다. 이는 당시 태평양 전선에서 발생한 미군 전사자 총수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작은 섬 몇 개를 장악하기 위해 미군이 이토록 큰 희생을 감수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일본 본토 공격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오지마 점령으로 P-51 머스탱 전투기의 작전 거리 안에 일본 본토가 들어오게 됐다. 폭격기 호위 임무에 주로 투입된 P-51의 작전 반경은 1500km를 상회했다. 도쿄로부터 남쪽으로 1200km 떨어진 이오지마 비행장에서 P-51이 이륙하면, 사이판에서 출격한 B-29 폭격기의 임무 수행을 지원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오지마 점령을 계기로 P-51이 맹활약하면서 미군 폭격기의 피해는 크게 줄어들었다. 결국 1945년 8월 마리아나 제도에서 이륙한 B-29 폭격기는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비록 작은 섬들에서 1만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긴 했지만, 종전의 밑거름이 된 그들의 희생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레노버의 IBM 인수도 비슷한 예다. 2001년부터 3년간 IBM은 레노버에 PC사업부 매각을 지속적으로 제안했다. 이에 레노버 경영진은 2004년 11억 달러의 인수가격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부터 이듬해 초까지 긴 협상 과정을 거쳐 최종 합의된 가격은 6억 달러의 현금과 자사 주식 등 총 17억5000달러였다. 이는 레노버가 애초에 제시한 가격(11억 달러)보다 약 60%나 할증된 가격이다. 당시 IBM PC사업부가 적자에 빠져 고전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인수 결정은 다소 무리해 보였다. 하지만 레노버는 글로벌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선 IBM PC사업부 인수가 꼭 필요하다고 보고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주효했다. 2003년 세계 PC 시장점유율이 2.2%에 불과했던 레노버는 인수 직후 PC 생산량 약 1200만 대, 매출액 120억 달러로 세계 3위 PC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후에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2012년 3분기(7∼9월) HP를 제치고 글로벌 PC 업계 정상을 차지했다. 만약 레노버가 최초에 제안한 인수가격 11억 달러를 고집하다 거래가 무산됐다면 이런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웃돈’을 얹어주면서라도 전략적 가치를 평가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김경원 대성합동지주 사장 alexkkim7@gmail.com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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