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한국號, 이대로 멈추어야 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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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달리 생각해도 다산의 경고가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어떤 것도 썩기 마련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낮은 곳’을 향해 모두 힘을 합쳐 움직이는 물은 썩지 않는다. 한곳에 머물러 우왕좌왕하는 물은 반드시 썩는다. 물에게는 ‘낮은 곳’이 빛이고 비전이고 사명이다. 우리가 고인 물처럼 우왕좌왕하며 썩어가고 있다면 이유는 ‘낮은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빛과 비전과 사명을 놓친 것이다. 시대의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시대에 맞는 비전을 설정하고 그곳을 향해 움직이는 국가는 흐른다. 국가가 잘 흐르면 발전하고 번영하지만 멈추면 썩는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번영은 얼마 전까지 우리가 물처럼 잘 흘렀음을 보여준다. 시대적 조건에 맞는 방향 설정에 성공적이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당시의 제한된 조건 속에서 광복을 맞이하였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광복의 결과로 건국이라는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업을 떠안았다. 무척이나 부산스럽고, 또 혼란스러웠다. 이승만과 김구 사이에도 수없이 복잡다단한 경쟁과 투쟁이 있었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어찌 되었건 건국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였다. 대한민국을 세운 것이다. 이것을 잘못된 일이라고 하지는 말자. 누구나 알지 않은가? 광복이 우리의 손으로 완수된 것이 아님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나약했음도 인정하자.

건국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완수한 후에는 새로 다시 태어난 나라를 탄탄하게 살찌워야 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누가 뭐래도 당시의 시대적 사명은 산업화가 아닐 수 없다. 소음도 심했고 갈등도 심했다. 하지만 산업화라는 사명은 당시 시대적 조건과 일치를 이루었고, 어찌 되었건 우리는 그 사명을 완수하였다. 잘 흐른 것이다. 산업화라는 시대적 사명이 무르익을 때 계속해서 산업화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또 멈춰서 흐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다음 사명을 설정하는 데 성공하여 계속 흐를 수 있었다. 바로 민주화다. 산업화는 거칠게 말해서 도시화와 공업화이다. 산업화 이전의 농촌 중심 농업경제가 도시 중심 공업경제로 이행한 것이다. 이 이행으로 우리 사회는 새로운 유형의 계급들로 채워진다. 새로운 계급의 출현에 맞춘 새로운 정치 조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민주화라는 시대적 사명을 포착하였고 또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건국에서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까지 잘 흘러온 역사가 바로 지금 우리의 자부심이자 자랑이다. 우리 번영을 설명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법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흐르지 않게 되었다. 민주화 다음의 시대적 사명을 설정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민주화와 산업화 세력 간의 싸움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이념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업화에서 민주화로의 이행은 직선적 역사발전이다. 민주화 다음의 어젠다 설정에 실패한 후에는 벽에 갇혔다. 민주화 다음의 빛을 향해 나아가며 지속적인 직선 이행을 시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벽에 갇혀 두 세력은 수평적 전투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빛이 보이지 않는, 혹은 새로운 사명이 나타나지 않는 곳에서 시간성은 분실되고 모두 함께 멈춰 서서 남 탓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다. 공멸의 길이자 다 함께 썩는 일만 남는다. 후진국형 재난이 끊이지 않는 것은 나라가 후진국적 레벨에서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후진국 레벨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흐르지 못하고 멈춰 서서 썩고 있다.

이제는 민주화 다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 길만이 새로운 번영을 약속한다. 민주화 다음의 어젠다 설정에 실패하면, 사회적 조건과 국가의 방향이 일치되지 않아 극단적인 비효율 속으로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국력은 약화되고 국민은 분열된다. 민주화 다음의 사명을 선진화라고 이름 붙여도 좋겠다. 이름이야 어찌 되었건, 선진적 레벨의 시선을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최근 200여 년의 역사 속에서는 후발 주자로 출발하였던 어느 나라도 성공해 본 적이 없는 과업이다. 이런 지경이라면 가능성 여부를 묻는 일은 헛되다. 할 테야, 안 할 테야? 서로 바라보며 이렇게 다그치는 일만 남는다. 차라리 이렇게 물을 일이다. 우리 이 정도로만 살다 가도 괜찮아?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최진석#민주화#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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