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펭귄 사생활, 한국에서 생생하게 엿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첨단 GPS로 생태연구 활발

“젠투펭귄이 물속에서 크릴 떼를 만났군요. 저 정도 크기면 잡아먹을 수 있겠는데요.”

김정훈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요즘 남극 세종기지 인근 ‘펭귄마을’에 서식하는 펭귄 생태 연구에 여념이 없다. 펭귄은 남극에 있지만 김 연구원은 1만7000km 떨어진 인천 송도국제도시 극지연구소에 있다. 펭귄 몸에 달아 놓은 센서들이 펭귄의 일거수일투족을 데이터로 기록해 펭귄을 직접 따라다니지 않고도 연구할 수 있게 됐다.

이마와 등에 자동기록기를 붙인 남극 ‘펭귄마을’의 젠투펭귄. 펭귄이 움직일 때 생기는 가속도 변화와 먹이를 찾아 잠수하는 동안 바다 깊이나 수온 등이 초 단위로 기록된다. 카메라는 펭귄의 움직임을 생생한 동영상에 담는다. 극지연구소 제공
이마와 등에 자동기록기를 붙인 남극 ‘펭귄마을’의 젠투펭귄. 펭귄이 움직일 때 생기는 가속도 변화와 먹이를 찾아 잠수하는 동안 바다 깊이나 수온 등이 초 단위로 기록된다. 카메라는 펭귄의 움직임을 생생한 동영상에 담는다. 극지연구소 제공
○ 펭귄에 자동기록기 달아 기후변화 영향 연구

세종기지가 있는 남극은 지구상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빨리 받는 지역이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상승하고 남극의 빙산과 빙하가 녹으면 펭귄 개체 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펭귄마을의 터줏대감인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의 생태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연구된 것이 없다.

지난해 11월 세종기지 월동대원들은 먹이 사냥을 나가는 젠투펭귄과 턱끈펭귄 30마리를 붙잡아 일일이 자동기록기(logger)를 붙였다. 자동기록기에는 위치추적기와 온도·수심 센서, 가속도 센서, 카메라 등이 달려 있어 1초에 한 번꼴로 펭귄의 행동을 기록한다.

자동기록기 무게는 수십 g으로 가볍고 털에 붙였다 떼는 형태여서 펭귄 몸에 상처가 남지 않는다. 펭귄이 먹이를 먹고 하루 이틀 뒤 집으로 돌아오면 자동기록기를 수거해 데이터를 저장한다. 펭귄이 어디서 뭘 했는지 촬영한 영상은 자동기록기 하나에서만 10시간 분량이 나온다.

최근 김 연구원은 올해 1월까지 꼬박 3개월간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세종기지에서 20km 떨어진 바다까지 활동 반경을 넓힌 젠투펭귄이 있는가 하면 30km까지 모험하는 턱끈펭귄도 발견됐다. 물고기 사냥도 수심 150∼200m로 다양했다.

김 연구원은 “데이터가 워낙 방대해 분석에 앞으로 5, 6개월이 더 걸린다”면서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이 서식지와 먹이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분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3월 충남 태안군 안면읍 중장리 천수만에 서식하는 청둥오리에게 22g짜리 위치추적기(WT-300)를 부착한 뒤 지금까지 서식지 이동 경로를 추적해오고 있다. 국립중앙과학관 제공
올해 3월 충남 태안군 안면읍 중장리 천수만에 서식하는 청둥오리에게 22g짜리 위치추적기(WT-300)를 부착한 뒤 지금까지 서식지 이동 경로를 추적해오고 있다. 국립중앙과학관 제공
○ 청둥오리 추적해 AI 확산 경로 확인

백운기 국립중앙과학관 박사팀은 한국환경생태연구소와 공동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를 옮기는 것으로 알려진 청둥오리와 기러기 등 철새 500∼600마리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이들에게 부착한 위치추적기 ‘WT-200’은 무게가 50g으로 무거운 편이어서 조류 중에서도 비교적 몸집이 큰 청둥오리와 기러기에만 달 수 있다. 백 박사는 “청둥오리는 현재 중국 북쪽과 몽골 지역에 머물고 있다”면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휴대전화 기지국을 이용해 위치 정보를 확인하는 만큼 오차 범위가 10∼40m로 상당히 정확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가창오리에 달 수 있는 위치추적기도 개발하고 있다. 가창오리는 지난해 H5N8형 AI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국내에 AI를 전파한 주범으로 지목된 바 있다. 몸집이 작은 가창오리(평균 몸무게 약 420g)에 부착할 수 있는 위치추적기는 몸무게의 3%가량인 15g으로 매우 가벼워야 한다. 연구진은 위치추적기 개발을 마무리하는 대로 내년 겨울 가창오리도 추적할 계획이다.

백 박사는 “조류에 위치추적기와 센서를 붙이면 인간은 숨쉬기도 힘든 1만 m 상공의 환경 변화도 연구할 수 있다”면서 “위치추적기 덕분에 육해공 전 분야에서 연구의 지평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거릿 크로풋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교수팀은 아프리카 개코원숭이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뒤 이를 토대로 의사 결정 방식을 확인해 ‘사이언스’ 19일자에 발표했다. 노르웨이와 영국 연구진은 흰고래에 자동기록기를 붙여 얼어붙은 북극 바닷속 환경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도 진행했다.

최영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jxabbey@donga.com
#남극#펭귄#GPS#생태연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