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인 어떻게 日에 갔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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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50년, 교류 2000년 한일, 새로운 이웃을 향해]
한일 중간지점의 쓰시마섬, 부산-日가라쓰서 모두 보여… 항해 기준점-피신처 역할

지금으로부터 1만여 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때쯤 중국 대만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하나의 땅덩어리였다. 빙하기가 끝나 수천 년 동안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낮은 지대에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서해가 생겨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은 반도가 됐고, 대한해협이 생겨나 동해가 태평양과 연결되면서 일본은 섬나라가 됐다.

일본이 떨어져 나간 뒤에도 한반도와 일본의 교류는 이어졌다.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규슈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이어주는 통로였다. 규슈 가라쓰 시에 가면 우리 옛 조상들이 뗏목을 타고 거친 바다에 나가 위험한 항해 끝에 일본에 도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름 아닌 쓰시마(對馬) 섬 때문이다.

경남 함안 지역에 존재했던 아라국(561년 멸망) 후예들의 일본 이주를 연구한 정효운 동의대 교수에 따르면 쓰시마섬은 양국 해상 교류를 쉽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부산에서 멀리 쓰시마섬이 보이듯 가라쓰에서도 쓰시마섬이 보인다. 이는 일본으로 배를 타고 간 우리 조상들에게 정처 없는 항해가 아닌 정확한 목적지를 보면서 가는 항해였다는 것을 뜻한다.

정 교수는 “전라도 영산강이나 섬진강 하구 등의 한반도 서남해안에서 출발하여 남해안의 섬들을 거점으로 삼아 쓰시마섬까지 가는 해로가 백제가 이용한 주요 해상교통로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바다의 흐름인 해류(海流)도 교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요즘도 가라쓰 해변을 거닐다보면 한국 상표가 붙은 생수 병이나 라면 봉지 같은 한국에서 떠내려온 각종 쓰레기를 볼 수 있다. 가라쓰 시 이데 겐조(井手憲三) 국제교류과장은 “그 옛날 한반도인들도 이 해류를 타고 일본 섬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했다.

가야 고구려 백제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일부는 자신들의 국가가 멸망하자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부흥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멀리 보이는 일본 땅은 그들에게 또 다른 희망이었다. 그리고 한반도와 매우 비슷한 이곳 규슈에서 일본인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 건설에 힘을 보탰던 것이다.

가라쓰=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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