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지…‘현대판 그리스 비극’에 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1일 15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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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출신인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밴(49)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두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옮겼다. 아들에게 알래스카에서 함께 살자고 청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거절한 다음해 권총으로 자살했다.

충격으로 장기간 불면에 시달린 밴은 아버지의 죽음을 견디고,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 그렇게 10년을 써서 완성한 소설이 ‘자살의 전설’이다. 소설에선 아버지와 함께 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건너간 소년이 아버지의 절망을 목도하고 대신 목숨을 끊는다.

‘자살의 전설’은 20여 년 가까이 출판사를 찾지 못해 빛을 보지 못했다. 2008년 한 대학 출판부에서 소량 출간됐고, 뉴욕타임스(NYT)에서 이를 극찬한 리뷰 기사를 쓰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세계 12개 문학상을 수상하고 20개 언어로 번역됐다. 지난해 한국에 소개돼 황현산 문학평론가와 여러 소설가들이 ‘특별한 소설’로 추천했다.

밴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번역된 소설 ‘고트 마운틴’(아르테)의 출간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이번 소설엔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사슴사냥을 떠났다가 세 번의 살해를 저지르는 소년이 등장한다. 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입주작가로 머물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은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의 조해진 작가(39)와 함께였다.

▽조해진=소설 속에 개인적인 상처를 드러내기란 쉽지가 않다.

▽밴=글쓰기는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를 준다. 아버지가 알래스카로 오라고 할 때 거절했었는데 글쓰기를 통해 인생을 다시 구성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추하고 나빴던 경험도 아름답게 바꿔줄 수 있다. 또 비극을 겪었기에 재료가 있어 글도 쓸 수 있었다.

▽조=첫 소설 출간까지 집필 시간도 길고 진통도 많았다. ‘고트 마운틴’은 어떻게 썼나.

▽밴=나는 ‘무의식 글쓰기’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 명상을 하고, 전날 쓴 글을 다시 읽고, 아무런 계획 없이 빠르게 써나간다. 소설 결말도 정해두지 않는다. 이번 소설도 마지막 15페이지를 남겨두고 ‘이렇게 쓰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의 전설’에서도 무의식중에 소년이 자살한다는 문장을 써놓고서 놀랐다. 그때부터 무의식으로 쓰고 있다.

▽조=놀랐다. 난 미리 플롯(plot)을 짜고, 결말도 가능한 생각을 하고 쓴다. 특히 장편 같은 경우엔 더 그렇다. 영국 워익대 문예창작과 교수인데 학생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나.

▽밴=작가마다 다르다는 전제로, 내 이상한 글쓰기도 이야기해준다. 다만 매일 아침 글을 쓸 것을, 어떤 순간에도 쓰라고 요구한다. 특히 풍경, 자연 묘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배경 묘사 속에서 주인공의 내면, 갈등이 드러나고 비극도 그 안에서 나온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기 멋대로라 제어할 수가 없다.(웃음)

▽조=이번 소설 이야기를 들려 달라.

▽밴=고대 그리스 비극은 늘 인간이 구현한 지옥을 그린다. 현재라는 단절된 시공간 속에서 서로 잘 아는 인간들이 어떻게 서로 상처를 주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지를. ‘고트 마운틴’은 단 이틀 반 동안의 시간, 사냥터라는 밀폐된 공간 속에서 재현된 현대판 그리스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지옥의 정점을 소년의 회고로 그리고 싶었다.

▽조=첫 책 출간까지 20년 넘게 걸렸는데,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했거나, 등단했지만 무명에 머물러 있는 작가에게 해줄 말이 있나.

▽밴=모든 작가는 불안하기 마련이다. 나도 아침마다 전날 쓴 원고를 읽으면 쓰레기(shit) 같다. 데뷔전엔 8년간 항해사로 일했고 6년간 글을 쓰지 않기도 했다. 30대를 허송세월로 보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작가에겐 행운(luck)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웃음)

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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