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배추쌈에 막걸리까지… 유럽 ‘침 꼴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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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에 부는 K-푸드 열풍]<1>현지화하는 한식당들

《 아시아 음식을 꼽으라면 일본의 스시(초밥)나 태국·베트남의 쌀국수를 먼저 떠올리던 외국인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유럽 곳곳에서 김치와 비빔밥, 삼겹살 등 한식이 새로운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이와 함께 유자, 딸기, 한라봉 등 우리 농산물 수출도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 먹거리가 K팝과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韓流)의 다음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유럽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불고 있는 먹거리 한류의 현황과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전략 등을 3회에 걸쳐 알아본다. 》  
베를린 ‘강남포차’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독일 동베를린 지역에 자리 잡은 한식당 ‘강남포차’를 찾은 손님들이 삼겹살, 불고기에 맥주와 소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다. 베를린=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베를린 ‘강남포차’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독일 동베를린 지역에 자리 잡은 한식당 ‘강남포차’를 찾은 손님들이 삼겹살, 불고기에 맥주와 소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다. 베를린=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날 한번 믿어봐. 정말 실망하지 않을 거야.”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오후 7시경 독일 베를린 미테 지구의 한식당 ‘강남포차’에 금발의 20대 여성 두 명이 들어섰다. 두 사람은 메뉴판에 있는 꽃등심을 가리키며 2인분을 주문하고는 소주도 한 병 달라고 했다. 이곳의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리앤 머커 씨(26·여)는 “고향인 캐나다에 있을 때 한국인 친구 집에서 불판에 구워 먹는 고기를 맛본 뒤로 한국 음식 팬이 됐다”며 “친구가 아직 한식을 못 먹어봤다고 하기에 데리고 왔다”고 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강남포차의 주 메뉴는 삼겹살, 꽃등심 등 고기 요리. 국내에서처럼 손님들이 생고기를 집게로 집어 불판에 직접 구워 먹는다. 고기를 주문하면 배춧잎과 쌈장, 다른 밑반찬도 함께 준다. 이곳 주인인 황광용 씨(38)는 “불판은 한국에서 직접 가져왔고 고기도 아는 곳을 수소문해 마블링이 있는 부위를 공급받고 있다”며 “손님의 80%는 독일인을 비롯한 서양인이고 한국인은 10% 안팎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한 시간가량 지나자 식당 안팎에 마련된 테이블 10여 개가 모두 찼다. 대다수는 현지인이었다. 바깥 테이블에서 삼겹살을 굽던 다니엘 리버 씨(33·광고 기획사 근무)는 “나이프와 포크 없이 직접 고기를 구워 신선한 채소에 싸먹는 게 매우 신선하고 재밌는 접근”이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거부감 없이 즐기는 분위기”라며 웃었다.

○ 정확한 발음으로 “김치찌개 주세요”


현재 해외에서 영업 중인 한식당은 1만여 곳. 이제 주요 국가 어디서든 한국 식당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과거 해외의 한식당은 현지에 나가 있는 국내 기업 주재원이나 교포,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현지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한식당이 해외 주요 도시 곳곳에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K팝과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는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 남미에도 ‘2세대 한식당’이 등장하고 있다.

현재 한식재단이 홈페이지에서 공개 중인 해외 한식당 정보에는 기자가 찾은 베를린에 11곳의 한식당이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현지인들에 따르면 최근 3, 4년 사이 새로 생겨난(한식재단 정보에 없는) 한식당이 10여 곳이나 된다. 이런 식당들은 특히 한인들이 많은 서베를린이 아닌 미테, 크로이츠베르크 등 동베를린 지역에서 문을 열었다.

베를린은 최근 디자이너, 예술가, 벤처 창업가 등이 몰리면서 유럽에서 가장 ‘핫’한 도시로 통한다. 미테 지구에서 비빔밥과 김밥, 만두 등을 파는 한식당 ‘얌얌’의 손님도 절반이 독일인이다. 다른 외국인이 30%, 한국인이 20%를 차지한다.

얌얌을 운영하는 하수미 씨(39·여)는 “우리 가게는 반찬이 많고 가격대가 비싼 기존 한식당과 달리 젊은이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갖췄다”며 “매일 점심마다 불고기를 주문하는 독일인도 있을 만큼 현지인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일부 한식 메뉴는 이제 외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식당에서 ‘불고기’나 ‘김치찌개’를 정확한 발음으로 주문하는 이를 보는 게 낯설지 않을 정도다.

2일(현지 시간) 파리의 한식당 겸 주점 ‘백세주마을’을 찾은 루안 루베이르 씨(52)도 정확한 발음으로 김치찌개와 잡채를 주문하고는 능숙한 젓가락질로 음식을 먹었다.  
▼ “한식재료 슈퍼 판매 등 유통 확대해야” ▼

지구촌 K-푸드 열풍


백세주마을은 국순당이 지난해 3월 외국인들에게 한식과 한국 술을 소개하기 위해 문을 연 곳이다.

루베이르 씨는 “집에서 불고기도 요리하고 김치도 직접 담글 만큼 한식을 즐겨 먹는다.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한국이나 한식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고 강조했다.

○ 팥빙수, 단팥빵 등 새로운 먹거리도 선보여

이제는 새로운 한국 먹거리도 속속 유럽에 선을 보이고 있다. 2011년 동베를린 지역에 문을 연 한식당 겸 카페 ‘공간’의 대표 메뉴는 팥빙수다. 얼음을 곱게 갈아 놋그릇에 담고 그 위에 팥을 올려놓은 팥빙수는 현지인에게 매우 낯선 디저트다.

공간 점주 이종영 씨(43)는 “현지인 대다수는 빙수를 잘 모르지만 일단 맛을 보면 열에 아홉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며 “달콤한 팥과 시원한 얼음이 어우러진 맛에 매료된 독일 사람들이 하루에 30∼40명씩 찾아온다”고 말했다.

지난해 파리 중심가인 샤틀레역 근처에 문을 연 파리바게뜨는 5월 말부터 단팥빵과 곰보빵을 선보였다. 이런 빵은 한국이나 일본 등지에선 흔하지만 빵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매니저인 실비에 카요 씨(50·여)는 “아직은 주로 동양인들이 반가운 마음으로 제품을 찾지만 샘플을 맛본 프랑스인 고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라며 “단맛을 좋아하면서도 생크림 같은 재료가 부담스러운 이들은 특히 식물성 원료인 팥이 들어간 빵에 호감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치가 유럽에서 인기를 끌자 김치를 파는 현지 중국식당이나 베트남식당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부 중식당에서는 한국의 ‘3분 요리’류 즉석식품을 구해다가 밥에 얹어 한식이라며 제공할 정도다.

김영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파리지사장은 “식당을 넘어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등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식재료를 더욱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면 최근 케이팝이나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대중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베를린·파리=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지구촌#K-푸드#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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