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 물폭탄이 10분간 무대에 쏴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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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연극 ‘리어왕’… 폭풍우 장면 강렬한 인상

재산과 권한을 빼앗긴 채 딸들에게 버림받은 리어왕이 충직한 신하 켄트, 광대와 함께 폭풍우 몰아치는 황야에서 자책하는 장면. 이 장면을 위해 2t가량의 물이 공연 때마다 사용된다. 국립극단 제공
재산과 권한을 빼앗긴 채 딸들에게 버림받은 리어왕이 충직한 신하 켄트, 광대와 함께 폭풍우 몰아치는 황야에서 자책하는 장면. 이 장면을 위해 2t가량의 물이 공연 때마다 사용된다. 국립극단 제공
16일 막이 오른 국립극단의 신작 연극 ‘리어왕’의 백미는 1막 마지막에 10분간 이어지는 ‘폭풍우’ 장면이다. 2t 가까운 물이 무대 위에서 실제 비처럼 대차게 쏟아진다. 리어왕과 충직한 신하 켄트, 광대 3명은 45도가량 기운 무대에서 뿌리째 뽑힌 나무와 함께 비를 맞으며 힘겹게 버틴다. 빗속에서 리어왕은 자신의 우매함을 자책하며 두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던 그날을 후회한다.

‘리어왕’은 우매한 권력자의 인생을 그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 심술궂고 제멋대로인 리어왕은 세 명의 딸을 불러 모아 괴팍한 방식으로 재산을 상속한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봐라.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물려줄 재산과 권한의 양을 정하겠다.”

장녀 고너릴과 차녀 리건은 마음에도 없는 사탕발림을 쏟아내지만, 막내인 코딜리아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에 차라리 입을 다물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재산은 고너릴과 리건의 몫으로 돌아가고, 코딜리아는 아버지에게 버림받는다. 재산을 챙긴 뒤 리어왕을 대하는 고너릴과 리건의 태도는 사뭇 달라진다. 아버지를 구박하고, 심지어 ‘적’으로 여긴다. 그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리어왕은 거적때기 옷을 입고 황야로 나가 방황한다.

리어왕의 무대는 전체적으로 단순하다. 크게 5개의 판으로 구성된 무대가 배우들의 복잡한 동선을 잇는 복도 역할을 하며 궁전의 웅장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이태섭 무대감독은 “그냥 비가 오는 시늉만 내고 연기할 수도 있지만 요즘 관객들은 직접 체험하거나 눈으로 확인하는 걸 좋아해 많은 양의 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리어왕 켄트 광대 등은 대사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흠뻑 비를 맞으며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배우들이 많은 비를 맞기 때문에 물의 온도를 15∼20도로 미지근하게 맞춘다. 이 감독은 “무대 위로 쏟아진 물은 무대 아래 깔아놓은 방사포에 모은다”며 “공연이 끝나면 스태프가 부리나케 달려가 방사포에 담긴 물을 빼는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폭풍우 장면에 등장하는 고목 한 그루도 인상적이다. 이 감독은 “뿌리째 뽑혀 사방으로 흔들리는 고목은 리어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폭풍우 장면에서 경사를 45도 기울인 것도 불안한 인간의 심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02-727-0950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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