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경석]李총리 할 일은 칩거 아닌 사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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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국무총리가 있는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22일 승용차 한 대가 빠져나오고 있다. 이 총리는 20일 사의를 표명한 뒤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한 채 공관에 머물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완구 국무총리가 있는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22일 승용차 한 대가 빠져나오고 있다. 이 총리는 20일 사의를 표명한 뒤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한 채 공관에 머물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강경석·정치부
강경석·정치부
22일로 이완구 국무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지 이틀이 지나고 있다. 하지만 중남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이 총리의 사표를 정식 수리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현직 국무총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1일 국회 기재위에 출석해 “총리는 사퇴를 한 상황이 아니며 제가 국무회의를 주재한 건 업무를 대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가 한밤중에 전격 사의를 표명한 이후 세상에 공개된 모습은 공관에서 잠옷 차림으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뿐이다. 총리 비서실이 21일 0시 52분에 출입기자들에게 발송한 문자메시지에는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취지의 짤막한 사실만 담겨 있었다. 그 어디에도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유감”이라는 문구는 없었다. 이 총리 역시 이틀째 공관에 칩거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총리 칩거 이후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등 총리실 고위 관계자만이 공관에 들어가 업무 현안을 보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총리는 별다른 언급 없이 “국정을 잘 부탁한다”는 당부만 했다고 한다. 총리 측근들도 “이미 만신창이가 된 총리가 지금 당장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선 “이 총리의 무언(無言) 칩거가 길어질 경우 국민들은 이 총리가 자신의 사퇴에 대해 불만을 품고 정치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총리 본인은 억울할지 모른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죽기 전 남긴 ‘3000만 원 수수 의혹’에 휩싸여 일국의 총리가 소명의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범죄자 취급을 당하면서 등 떠밀리듯 사퇴하게 된 것이 못마땅할 수 있다. 자신을 향해 날을 세웠던 언론은 물론이고 ‘사퇴 불가피론’의 뒤에서 돌을 던진 동료 의원들도 원망스러울 테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의 총리이자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3선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국민들 앞에 당당하려면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민들에게 유감을 표명하고 사과한 뒤 향후 검찰 수사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차분하게 소명하는 것이 정도다. 이 총리를 비난하는 국민도 있지만, 관련 의혹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국무총리로서 어떻게 마지막 매듭을 짓느냐에 따라 정치인 이완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이완구#칩거#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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